충청(忠淸)의 의미
충청(忠淸)의 의미
  •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 승인 2021.11.25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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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괴산군 칠성댐 상류에 있는 `충정도 양반길'의 일부 구간을 걷는 시간을 보냈다. 괴산의 명소로 알려진 `산막이 옛 길'은 서너 번 다녀왔지만 `충청도 양반길'은 이번이 첫 방문이다. `충청도 양반길' 중 칠성댐 상류 구간은 등산로라기보다는 댐을 끼고 걷는 산책길에 가까워서 등산을 즐기지 않는 분들도 비교적 편안하게 걸으면서 몸과 마음을 힐링 할 수 있을 듯하다. 충청도 양반길을 걷다가 충청(忠淸)이라는 말이 저절로 떠올랐다. 충성 충(忠)은 가운데 중(中)과 마음 심(心)을 합한 글자고, 맑을 청(淸)은 물 수( )에 푸를 청(靑)을 합한 글자라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충청도에서 나서 자라고, 대학 생활과 10여 년 동안의 직장 생활을 하느라 서울에 머물다가 다시 귀향해서 충청북도 청주에서 20여 년을 살았으면서도 충청이란 말의 의미를 떠올려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충(忠)이란 글자는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중(中)의 마음을 의미하는 글자다. 그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텅 빈 무심(無心), 지공무사(至公無私)한 고요하고 맑은 마음과도 일맥상통한다. 사서삼경 중 하나인 중용(中庸)은 “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희로애락지미발위지중) 中也者天下之大本也(중야자천하지대본야)”를 설파하고 있다. 기쁘고 성내고 슬퍼하고 기뻐하는 등의 감정이 일어나기 전의 고요하게 깨어 있는 마음이 바로 중이고, 중은 곧 천하의 근본임을 밝힌 가르침이다. 결국 충(忠)이란 `나 없음'의 텅 빈 무심, 지공무사한 마음, 심령이 가난한 상태의 마음, 그 어느 쪽으로 치우치거나 때가 묻지 않은 순수의식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충성스러운 신하라면 무조건 임금의 편에 서는 일은 없다. 임금일지라도 실정을 하게 되면 목숨을 걸고 임금의 문제점과 잘못을 간할 수 있는 대쪽 같은 신하가 바로 충성스러운 신하란 사실을 알 수 있다.

희로애락(喜怒哀), 선악미추(善惡美醜), 원근친소(遠近親疏) 등의 온갖 생각과 감정을 쉬고 중(中)의 마음을 회복하는 것은, 저울의 0점 조정과 같다. 저울을 0점 조정하는 것이 0점 상태에 머무르기 위함이 아니라, 정확한 무게를 재기 위함이듯 지공무사한 중의 마음을 회복하며 마음을 0점 조정하는 것은 생각 없는 무심을 유지하기 위함이 아니다. 자신의 이해타산을 벗어난 지공무사한 마음으로 세상의 옳고 그름을 제대로 파악하는 정견을 담보해 내기 위해 중의 마음을 회복하는 본 목적이다. 따라서 0점 조정된 마음인 충(忠)은 아무 생각 없이 무심에 머물며,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하는 것이 아니라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하며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지혜롭고 진솔한 마음이다.

온갖 지식에 물들지 않고 자신의 이득을 최우선시하는 일 없는 지공무사한 중의 마음이 충(忠)이라면 맑을 청(淸)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맑을 청(淸)은 삼 수( ) + 푸를 청(靑)이 합쳐져 물이 푸르다는 의미를 내포한 말이다. 물이 푸르다는 것은 물결이 출렁이면서 하얀 포말(泡沫)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 즉, 물이 잔잔하고 맑아서 푸른 하늘과 푸른 산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충청(忠淸)은 고요하고 맑은 물이 푸른 하늘과 푸른 산을 있는 그대로 비추듯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꿰뚫어 보면서 세상의 옳고 그름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중심 잡힌 지혜로운 마음과 그 마음의 작용임을 알 수 있다. 이 글과 인연 닿는 모든 독자가 충청(忠淸)의 마음을 회복-유지하면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주역이 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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