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좋은 날
오늘은 좋은 날
  • 김기자 수필가
  • 승인 2021.11.2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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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기자 수필가
김기자 수필가

 

눈물이 터질지도 몰라 손수건을 준비했다. 웬걸 제 아빠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딸이 생글생글 웃으며 걷기에 잠깐의 염려가 확 사라져 갔다. 십 년 전 아들을 보낼 때도 담담한 기쁨이었는데 오늘은 또 다른 기쁨이 스며든다. 결혼이란 관문을 통과하는 의례가 그야말로 축복의 장이 되고 있었다.

딸은 다를 줄 알았다. 삼십 년을 응석받이로 바라보았는데 어느새 제갈 곳으로 날아가다니 시원키도 섭섭기도 한 심정을 미리 짐작할 뿐이었다. 딸의 현재보다 내 인생의 현재를 파악하는 마당이라고나 할까. 많은 하객과 분위기에 따라 고조되는 기분이 처음 맛보는 어떤 중후함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마치 무르익어가는 어떤 현상에 취해 즐겁기만 하다.

순서 순서가 알찼다. 저희끼리 준비한 모든 것들이 지루하지 않고 좋았다. 요즘 들어 다른 결혼식을 보더라도 그랬던 것 같다. 어느 정도 식이 끝나갈 무렵이다. 예물교환에 이를 때쯤 화동으로 등장하는 손녀들의 모습을 보며 입이 활짝 열리고 말았다. 고운 한복차림을 하고는 등 뒤에 긴 꼬리표를 달고 나오는 게 아닌가. 내용인즉 제 고모결혼 축하의 글귀이다. 음악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며 신랑 신부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즐거움으로 남았다.

그뿐이 아니다.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도 아들 내외가 든든한 몫을 감당해 주었다. 몇 년 사이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낙엽처럼 변하고 있건만 넓어져 가는 아들의 가정을 보며 또 다른 희열을 느끼기 마련이었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식장을 두루 지키는 아들과 며느리를 보며 얼마나 흐뭇한지 말로 다 표현을 못 한다.

스스로 잘 살아왔다고 자부를 한다. 내가 결혼을 하고 살아온 많은 날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기에 그 기분 더하다. 오늘의 마당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내 생의 지경이 넓어진 것을 실감하는 기쁨이 이런 건가 보다. 물질의 풍요를 떠나 고비 고비 넘어온 인생길에서 안도감을 취하는 색다른 휴식이라 표현하고 싶다.

오늘은 정말 좋은 날이다. 내 인생이 다시 꽃피는 날이다. 비록 고목되고 낙엽을 매단다 해도 그것이 서글픈 일은 아니었다. 다시 생의 길이를 측량해보는 중요한 시간이었으며 자신을 위한 일 중의 하나기도 했다. 지금까지는 그저 앞만 보며 달려왔어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한 것까지 터득을 하게 되었다.

가장 피부에 닿는 것은 이제 걸어갈 날들이다. 한 발짝 한 발짝 간다 해도 후회와 부끄러움이 없기를 노력해야겠다고 다짐을 한다. 피할 수 없는 생로병사가 뒤따른다는 사실을 깨달아서다. 단순한 것 같지만 인생은 그렇게 흘러 마지막에 이르기에 돌아보면 순간순간이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이제 더 넓어진 나의 지경을 바라본다. 희로애락이 그 안에 있었고 또 새로운 사건들이 기다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거둘 수 없다. 하지만 누구나 다 그렇게 맞닿으며 가는 길이 인생이었다. 조금이라도 후회가 적게 살아가도록 따뜻한 마음만 이끌고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늘 오늘이 좋은 날이기를 소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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