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 사회의 늪
학벌 사회의 늪
  • 김금란 기자
  • 승인 2021.11.17 2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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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김금란 부국장
김금란 부국장

 

살면서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

학창시절엔 몇 등 하는 지, 부모 직업은 무엇인지, 어느 동네에 사는지, 어느 아파트에 사는지 비교당하기 일쑤였다.

상급학교로 진학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중학교 시절 선생님들은 시험이 끝나면 자신이 맡은 과목 점수를 노골적으로 공개했다. “만점 받은 사람 손들어”“한 개 틀린 사람 손들어”. 늦게 손을 들수록 부끄러움은 학생들 몫이다. 자존심은 성적순이었다.

고등학교나 대학 진학도 재능과 적성은 필요 없다. 일반고, 특성화고 진학 여부도 그렇고 인서울, 지역 대학 선택하는 기준도 역시 성적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인생의 목표는 대학입시에 맞춰져 있다.

성인이 됐다고 달라졌을까?

삼삼오오 모이면 서열을 정한다. 나이를 대놓고 묻기가 난처할 때 당연한 듯 “몇 학번이세요?”이라고 묻는다.

학벌은 우리 사회에서 권력, 명예, 지위를 얻을 수 있는 성공의 열쇠로 인식된 지 오래다.

너나 할 것 없이 어려웠던 시절 학사모는 그야말로 한집안의 희망이자 기둥이었다. 요즘은 너나 할 것 없이 학사모는 기본이요 대학원은 선택이 된 세상. 세상은 변했지만 생각은 그대로다. 고교 졸업생보다 대학 정원이 더 많아졌음에도 학벌에 대한 집착과 믿음은 되려 더 공고해졌다.

여전히 학벌은 우리의 발목을 잡기도 하지만 미래를 보장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재능도 부모의 재력이 있을 때 빛을 발한다.

잡코리아가 올해 성인남녀 388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한민국 성공요소 설문조사에서 1위는 경제적 뒷받침, 부모의 재력(29.5%)이 꼽혔다. 2위는 개인의 역량(22.7%)으로 나타났다. 이어 성실성(15.0%), 인맥 및 대인관계능력(10.9%), 학벌 및 출신학교(7.7%) 순이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발표한`교육지표 2021'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년층(만 25~34세) 고등교육 이수율은 69.8%로 OECD 국가 중 1위를 나타냈다. OECD 평균(45.5%)보다 24.3%p 높았다. 2019년 우리나라 성인(만 25~64세)의 교육단계별 상대적 임금(고졸자 임금=100 기준)은 전문대 졸업자 108.3%, 대학 졸업자 136.3%, 대학원 졸업자 182.3%로 교육단계별 상대적 임금 격차 폭이 컸다.

사람의 가치도 학벌이 좌우한다. 그러니 국적은 바꿀 수 있어도 학적은 못 바꾼다는 말도 나오지 않는가.

몇 해 전 지인은 직업교육을 배우기 위한 유럽 연수에 참여했다. 덴마크나 독일의 직업학교를 방문했을 때 한국방문단이 단골처럼 하는 질문은 바로 “ “특성화고 졸업자와 대학 졸업자 간 차별이 있느냐?”였다. 통역사가 아무리 설명을 해도 현지 교사나 학생들은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기술이 대접받는 나라에서 학력 차별을 논했으니 서로가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도 당연하다.

시민단체인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은 최근 21대 국회에 발의되어 있는`출신학교 차별금지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전국 1300여 개 시험장에서 50만9800여명의 수험생들이 오늘 2022학년도 수능 시험을 본다. 수능 시험 성적으로 인생이 달라지는 게 말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손 놓고 있는 정치권은 여전히 정쟁에 빠져 있다.

대학 입시가 청소년의 꿈이 돼버린 세상. 행복은 성적순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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