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장갑
고무장갑
  • 김기자 수필가
  • 승인 2021.11.15 20: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김기자 수필가
김기자 수필가

 

손도 나이를 말하고 있다. 통통하던 때가 어제였나 싶게 지금은 피부가 얇아져서 주름이 잡혀가는 상태다. 더구나 오랫동안 식당업에 종사하다 보니 자연스레 손에 물 닿는 것을 피하기 어려운 처지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다행이지만 아직 손가락관절이라던가 피부트러블은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일하는 데 지장은 없다.

코로나시대를 맞아 비용절감을 위해 주방일까지 감당하는 입장에 이르고 보니 스스로 용감하다고나 할까.

일과의 마지막 주된 부분은 설거지다. 사용한 그릇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서 세척을 기다린다. 이제 고무장갑으로 무장하고는 하나하나 세척기에 넣어 변신을 시키기에 열심이다. 마지막에 이르러 장갑을 벗기며 참 용한 물건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 것은 기본이 되어 버렸다. 고맙다는 눈 맞춤까지 이어간다. 말끔한 주방분위기와 함께 뒤집어서 물기를 빼둔 고무장갑이 하루의 안녕을 고해주는 모습에서다.

형편에 따라 요긴해진 고무장갑이 참 고맙다. 그러나 잘못 다루면 쉬 망가지기에 용도를 그르치는 경우가 되고야 만다. 기능이 다할 때까지 손의 안전을 책임져 주기에 이제는 필수가 되어 버렸고 주방이든 욕실이든 제자리를 차지한 지 오래인 현실이다. 언제부터 누가 만들어서 이렇게 편리하고 유익한 용도를 일으켜 놓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기 시작했다.

필요에 의해 사용하지만 또 다른 뜻을 건져 올렸다. 피부를 보호하고 안전을 더해주는 것만은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잠시 들여다보면 사람과 친화적인 물건일뿐더러 어떤 의미마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인생길을 지나오는 동안 나의 보호막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하는 심오함이 함께 밀려들고 있다.

돌아보니 참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생명으로 빚어낸 부모님이 계셨고, 자라나기에 적합한 기운을 나누었던 형제가 있었고, 내가 활보하며 질주해갈 사회의 마당이 허락되었다는 현실을 바라보게 되었던 것이다. 때로는 고단한 인생이라며 시름하기가 빈번했을 뿐더러 탈피해야 한다고 되뇌기도 여러 번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를 보호해준 주변의 인물들이 하나하나 떠오르는 거였다. 초로의 길을 따라 완숙하기 위한 인생길로 향하는 기분이라면 나도 누군가를 위해 어떤 보호막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되돌아볼 기회라고나 할까.

쉬 망가지는 고무장갑의 특성이지만 내포한 뜻은 다양했다. 작은 안전에서부터 시작해서 큰 모양으로까지 유익할 수 있는 여러 가지를 지니고 있었다. 한편 스스로를 바라보건대 한 가정의 부모가 되어 일상에서 분투할지라도 어쩌면 내가 보호를 받는 입장이 분명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셈이다. 강하게 보일지라도 뻔할 만큼 약한 존재라는 것을 무의식중에 알고야 말았다. 일상적인 도구에 지나친 고무장갑일지언정 그것은 바로 배려를 포함하고 있는 물건이었으며 스며 있는 사람의 마음과 같은 모양새라 말하고 싶을 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분홍의 고무장갑, 어떻게 누가 마미손이라는 또 다른 이름까지 덧붙여 놓았을까. 나도 여자이지만 그만큼 엄마의 손은 다양한 힘을 지녔다는 사실이 분명했다. 여리고 약할지라도 강하기 이를 데 없으며 보호막을 따라 더 큰 보호막이 되어야 하는 이치가 바로 엄마라는 의무 때문이었다. 남은 내 삶이 그렇다 해도 극구 피하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하면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