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살 청년에게 물을 책임인가?
22살 청년에게 물을 책임인가?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1.11.14 2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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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22살 청년이 `존속살해'라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법정에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뇌질환으로 쓰러진 50대 아버지를 고의로 방치해 영양실조와 폐렴으로 숨지게 했다는 것이다. 판결이 알려진 후 복지 사각지대로 지목돼온 간병 문제가 새삼 부각되고 있다. 최선을 다했느냐고 청년을 탓하기에 앞서 국가와 사회가 이 문제에 최선을 다했는지 자책하는 것이 옳다는 소리도 커지고 있다.

청년은 초등학교에 다니던 10여년 전 부모가 이혼한 후 아버지와 단둘이 살아왔다. 부자의 삶은 풍족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한다. 지난해 9월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며 가난은 참혹한 바닥을 드러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병원비가 청년의 목을 조여왔다. 치료비에 쫓긴 그는 병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8개월 만에 아버지를 퇴원시켰다. 청구된 병원비는 2000만원. 유일한 혈육인 삼촌이 퇴직금을 중간 정산해 처리했다.

청년에겐 또 다른 고행이 다가왔다. 움직일 수 없는 아버지의 식사를 돕고 대소변을 받아내야 했다. 욕창을 방지하기 위해 2시간에 한 번씩 누운 자세를 바꿔줘야 했다. 심야 편의점 알바로는 약값과 생계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전기·가스료는 이미 한참 전부터 연체됐다. 당시 청년의 폰에는 `쌀이 떨어졌으니 2만원만 보내달라”고 삼촌에게 보낸 문자가 남아있었다.

퇴원 1주일 만에 그는 아버지 방의 출입을 끊었다. 그날부터 8일 만에 아버지는 숨진 채 발견됐고 아들은 법의 심판을 받아야 했다. 판결에 숨겨진 사연이 알려지자 시민과 사회단체들이 청년의 선처와 복지시각지대 해소를 촉구하고 나섰다. 대선 후보들도 일제히 “실질적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목소리를 냈다.

`간병살인'은 새삼스러운 이슈가 아니다. 안타까운 사건들이 언론에 등장할 때마다 세간의 관심을 끌고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오르곤 했지만 외면받고 방치돼온 문제였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06년부터 2018년까지 발생한 간병살인은 176건에 달하고 154명이 살인죄로 법정에 섰다. 환자와 동반 자살한 경우까지 포함하면 희생자는 213명에 달한다. 희생자가 한 달 1.4명꼴이다. 대부분 사연이 지금 청년의 사례 못지않게 참담하다.

간병은 국민보험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다. 간병인이 석션과 피딩 등 의료행위끼지 해야 하는 무법지대이기도 하다. `메디컬 푸어'나 `간병파산' 같은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비싼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집에서는 24시간 중노동에 누군가가 삶을 희생해야 한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는 간병을 “국가 입장에서는 작은 사각지대이지만 누군가에겐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라고 진단했다. 한 군데가 틀렸다. 간병에서 비롯된 사건·사고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누구도 “나는 피해갈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는 폭탄이 눈덩이처럼 점점 커지며 미래를 향해 굴러가고 있다. `국가 입장에서도 더 이상 작은 사각지대'라고 할 수 없다는 얘기다.

지난해 `간병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연대'가 발족했다. 간병을 건강보험 영역에 포함시키고자 고군분투하는 시민단체다.

가족들이 정보와 애환을 나누는 커뮤니티도 있다. 대선 후보들은 원론적인 약속에 그칠 것이 아니라 이들을 직접 만나 피눈물나는 현실을 들어보기 바란다.

아버지는 22살 아들의 허물어지는 일상을 보다못해 “너의 길을 가라”며 더 이상의 수발을 거부했다고 한다. 법은 죽기로 한 아버지의 선택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삶의 질보다 양으로만 포장한 100세 시대의 짙은 그늘에 간병 문제만 숨어 있는 것은 아니다. 간병에 더해 존엄사 문제까지 아우르는 토론과 합의의 장을 펼쳐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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