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에너지원 리추얼
삶의 에너지원 리추얼
  • 양철기 교육심리 박사·원남초 교장
  • 승인 2021.11.11 18: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리학으로 보는 세상만사
양철기 교육심리 박사·원남초 교장
양철기 교육심리 박사·원남초 교장

 

철학자 칸트가 코트를 걸치고 지팡이를 손에 쥐고 집 밖으로 나오면 이웃들은 정확히 그 시간이 3시30분이라는 걸 알았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정확히 새벽 4시에 일어나 8시간 동안 글을 쓰고 오후에는 달리기와 수영을 하고 저녁 9시에 잠자리에 드는 생활을 30년 넘게 지속하고 있다.

미국의 워런 버핏은 출근하자마자 무조건 1시간은 책 읽기를 한 후 업무를 본다. 베토벤은 매일 아침 60알의 원두를 정성스럽게 갈아 커피를 즐겼다. 시인 윤동주는 매일 신촌에서 서강까지 산책을 했다. 유대인들은 1주일에 1번은 모든 가족과 함께 3시간 이상 식사시간을 가진다.



# 리추얼이란?

`리추얼(ritual, 일정한 형식을 갖춘 의례)'은 일상생활에서 반복되는 일정한 행동패턴을 의미한다. 세상의 방해로부터 나를 지키는 혼자만의 의식, 나만의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삶의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의식이 리추얼이다.

문화 심리학자 김정운 박사는 습관(루틴, rutine)과 리추얼을 구분한다. 단순한 습관은 `의미부여'의 과정 없이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고 반복하는 행동 패턴이다. 리추얼에는 의미가 있어야 하며 그 의미는 단조로운 반복을 통해서 생긴다.

저녁식사 후 소화를 위해 30분씩 산책하는 것은 단순한 습관이지만, 10분을 산책하더라도 하루를 되돌아보고 생각을 정리한다는 의미를 담으면 그것은 리추얼이 된다. 10분, 그 시간만큼은 자신이 의미 있는 존재로 확인되고 그 시간만큼은 내가 삶의 주인이 되기 때문이다.



# 남·여의 리추얼

해외연구에 의하면 금실 좋은 부부가 함께 지내다가 할머니가 먼저 죽으면 할아버지는 대개 7~12개월 사이에 가장 많이 사망하며 2년을 넘기기 쉽지 않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먼저 죽으면 할머니는 4년 이상을 더 산다고 한다. 또한 배우자와 사별한 남성은 30%가 사망한 반면 여성은 15%에 그쳤다. 그리고 평소 건강했던 남성이 아내와 사별한 뒤 사망할 확률은 사별하지 않은 남성에 비해 2.1배나 높았다.

위의 연구 결과는 비록 해외의 사례이지만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라 생각된다. 은퇴를 앞둔 남성들의 공포는 여성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남편들은 아내에게 매달리기 시작하며 아내의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리추얼의 차이이다. 남편의 리추얼은 대개 아내와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아내의 리추얼은 남편 없이도 가능한 것이 많다. 일반적으로 여성의 리추얼은 남성의 리추얼 보다 더 광범위하다. 그래서 여성의 삶은 나이가 들수록 남성의 삶보다 정서적으로 훨씬 풍요롭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지면 그 리추얼도 사라지기에 남성들은 아내 없이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 즐거운 리추얼

50대가 되었는데 아무것도 해놓은 게 없는 것 같고 은퇴도 다가온다. 바야흐로 아내의 뒤만 따라다녀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이제 지금의 서툰 부분을 시작점으로 리추얼을 만들어 가야 한다. 헤밍웨이가 `모든 초고(草稿)는 걸레'라고 했듯이 시작은 미약하나 꾸준함과 의미부여로 나의 리추얼을 만들어 가야 한다. 단순하지만 재미있으면서도 의미가 있으며 그것이 최고의 리추얼이다.

김정운 박사는 나이 들수록 사소하지만 즐거운 리추얼이 우리의 삶을 구원해 준다고 한다. 대통령 바뀐다고 우리 부부관계가 좋아지거나, 국회의원의 여야 비율이 달라진다고 내 삶이 즐거워지는 일은 절대로 없다. 맞는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