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만의 해후
50년 만의 해후
  • 정인영 사진가
  • 승인 2021.11.02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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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인영 사진가
정인영 사진가

 

어린 시절의 자그마한 시골 초등학교의 아련한 기억은 과거로 돌아가 저 너머로 사라져가고 있어도 언제나 간절한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추억이 되살아난 것은 초등학교와 헤어진 지 50년 만에 다시 만난 산성초등학교에서였다.

나에게 뼈와 살이 되게 키워주신 부모님이 계셨다면, 인간 됨됨이와 지식의 가르침을 주셨던 스승님으로 선생님을 잊을 수 없다. 그 선생님께서 코흘리개 철부지를 어엿한 학생으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을 주신 은혜는 그 무엇보다도 크다.

교실에선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계시는 선생님, 하나라도 놓칠세라 조금의 빈틈도 없어 보이는 학생들의 태도는 장래 이 나라의 큰 사람이 될 거라는 데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오전 수업이 끝나니 학교 구내식당에서 맛있는 밥과 반찬으로 점심식사를 하는 학생들의 얼굴에 웃음이 그득했다. 선생님은 학생들이 없는 시간에 청소기로 교실 안과 밖을 밀고 닦는가 하면, 책상과 의자를 닦고 정리하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혼란한 날에 방역활동을 위해 학교를 찾은 나는 행복한 마음 이루 말할 수 없다. 흘러간 50년의 세월 속에 새삼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날들을 되돌려 본다.

내가 사는 마을 근처 국민학교에 입학한 첫해는 꿈같은 나날이었다. 막 한글을 깨우치고, 틈틈이 선생님께서 교정한 편의 느티나무 그늘에서 우리에게 빠이롱(바이올린) 연주를 해주셨다. 음악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면서도 한쪽 어깨 위에 악기를 올려놓고, 다른 손으로 기다란 막대기를 올렸다 내렸다 할 적마다 들리는 소리가 무엇에 미끄러지는 듯했다. 그 소리가 처음에는 좋은지 나쁜지도 모르고, 그저 그런가 보다 했는데, 날이 갈수록 차츰 감미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더니 저절로 그 시간이 기다려졌다.

2학년이 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학교에만 가면 아침에 먹은 것을 토하는 등 고생이 심했다. 첫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속이 뒤집히는 듯하면서 메스꺼움이 시작되어 구역질하는 것이 거의 매일 버릇처럼 이어졌다. 무얼 잘못 먹은 것도 아니면서 일어나는 고통이 서너 달 동안 이어지더니 여름방학이 다가올 무렵에서야 벗어날 수 있었다.

공부의 의미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2학년을 마치고 3학년에 올라서자 배우는 것에 조금씩 재미를 갖기 시작했다. 키가 작아 늘 교실 앞자리에 앉아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과 칠판에만 온 정신을 쏟아 공부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숙제는 물론 그날 배운 책을 읽고 쓰는데 열심이었다. 공부가 좋으니 학교에 가는 즐거움도 컸다. 언제 하루도 선생님의 말씀 하나라도 혹여 놓칠세라 노력에 노력을 다하여 국민학교를 후회 없이 마쳤다.

세월이 흘러 국민학교에 다닌 그 시절은 기억 저편으로 대부분 사라져 갔어도 어렴풋이 되살아나는 몇몇 추억을 더듬어 돌이켜 보니 마냥 새롭기만 하다. 시대변화에 따라 학교와 아이들의 모습도 많이 바뀌었음을 다시 보고 느낄 수 있었다.

현대식 건물에서 발전한 교육자료시설과, 선생님의 애정과 열정 아래 보다 우수한 인격형성에 앞서가는 학교와 아이들에서,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향수를 되살려내는 소중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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