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맞는 공무원, 더는 안된다
매 맞는 공무원, 더는 안된다
  • 하성진 기자
  • 승인 2021.10.31 1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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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하성진 부장(취재팀)
하성진 부장(취재팀)

 

15년 전인 2006년쯤 일이다. 청주 서원구청을 매일 찾아 공무원들에게 온갖 욕설을 퍼붓는 고질적인 악성 민원인이 한 명 있었다. 남성의 횡포는 갈수록 정도가 심해졌다. 직원 선에선 도저히 대응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담당 과장이 나섰다.

사무실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며 대화를 이어가던 중 이 남성은 돌변했다. 사무실에 있던 유리컵까지 집어던지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난동을 부렸다. 유리 파편이 해당 과장에게 튀면서 부상까지 입었다. 남성은 사과 한마디 없이 유유히 구청을 빠져나갔다.

취재 과정에서 이 남성은 그야말로 `안하무인'이었다. 경찰이 수사에 나섰고 결국 그는 결국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됐다.

그렇게 심하게 당하고도 왜 신고하지 않는 것일까. 질문에 구청에서 돌아온 대답은 허탈했다. 신고하면 다음 날 찾아와서 더 행패를 부렸다고 한다. 보복범죄였다.

일선 행정 현장에서 악성 민원인들로 고통받는 공무원들이 부지기수다. 15년 전이나 강산이 한번 변하고도 남았을 지금이나 달라진 건 전혀 없다. 되레 근래 있었던 사례만 봐도 심각성은 더해지는 듯하다.

지난달 25일 청주시 한 구청 민원실에서 불법 주정차 단속을 항의하던 60대가 상담 도중 갑자기 공무원에게 흉기를 던졌다. 다행히 흉기는 비말 가림막에 맞고 밖으로 튕겨 나갔지만, 민원인의 위협은 계속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그를 체포하면서 난동은 끝이 났다.

앞서 지난달 20일에도 청주시 한 구청에서 80대 민원인이 공무원을 폭행했다. 민원인은 마을 교량을 훼손해 원상복구 명령과 고발을 당한 뒤 여러 차례 구청에서 난동을 부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공무원 사이에서 `해도 너무 한다'는 푸념이 나온다.

한 공무원은 “주민을 위해 봉사하려 공무원이 된 것이지, 화풀이 대상이 되거나 매 맞으려고 공직자가 된 게 아니다”고 하소연했다.

참다못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청주시지부가 나서 청주시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청주시지부는 “공무원에 대한 막말과 폭력은 민원이 아니라 범죄”라며 “시는 `악성 민원인에 대한 공무원 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이번 사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라”고 요구했다.

민원 현장 공무원은 민원인과 직접 대면하기에 악질 민원이 발생하면 고스란히 담당 공무원이 감내해야 한다.

행정안전부 등에 따르면 악성 민원인의 폭언·폭행, 기물파손, 업무방해 등의 행위는 전국적으로 2018년 3만4484건에서 2019년 3만8054건, 지난해 4만6079건으로 2년 사이 33.6%나 증가했다.

악성 민원인으로 인한 공무원의 피해를 막기 위해 일선 지방자치단체는 각종 장비를 도입하는 추세다.

비상벨, 녹음전화, 폐쇄회로(CC)TV에 휴대용 촬영장비(웨어러블 캠), 공무원증 케이스 녹음기 등이다.

악성 민원인의 공무원 폭언·폭행이 갈수록 심각해지자 이를 예방하고 불미스러운 사고 발생 시 증거자료로 확보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하지만 실효성은 높지 않다.

제도적 장치 마련과 악성 민원인의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

민원인의 폭언·폭행 등으로 인한 담당 공무원의 신체적·정신적 피해 예방과 치유, 안전시설 확충을 보장하는 관련법이 개정돼야 한다. 또 공무원 대상 소위 `갑질'악성 민원인에 대한 처벌 수위도 한층 더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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