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 박윤미 노은중 교사
  • 승인 2021.10.31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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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박윤미 노은중 교사
박윤미 노은중 교사

 

폭풍우 치는 밤, 가난한 어부의 아내 자니는 다섯 아이를 먹여 살리기 위해 바다에 나간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폭풍우가 심해지자 자니는 아랫마을에 사는 시몬 아주머니를 걱정하여 찾아간다. 병든 시몬은 이미 죽어 있고 그 옆에 두 아기가 철모르고 꼼지락대고 있다. 자니는 폭풍우 속에서 무언가를 싸안고 집으로 돌아오며 자신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한 건지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한다.

폭풍우가 멈추고 남편이 무사히 돌아왔다. 그리고 시몬의 죽음을 듣고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두 아이를 데려오자고 말한다. 남편의 말에 자니는 멈칫한다. 이를 본 남편이 말한다.

“정말 당신답지 않군!”

자니는 남편을 데리고 침대로 가서 이불을 걷어 올린다. 두 아기가 깊고 평화로운 꿈을 꾸고 있다.

<노트르담 드 파리>, <레미제라블>의 작가, 빅토르 위고의 단편 <가난한 사람들>의 줄거리다. 물질적으로는 비록 가난하지만, 가족과 이웃을 돌보는 책임을 다하며 살아가는 민중들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엿보인다. 제목은 역설적으로 진정한 풍요의 의미를 각성하게 한다.

위험한 바다에 나가서 고된 일을 하며 가족을 부양하는 남편의 수고를 알기에 자니는 자신의 동정심이 남편의 어깨에 더 얹어주게 될 부담을 충분히 짐작하고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다섯 아이를 키우면서도 가난한 살림이었는데 이제 일곱 아이를 부양하게 되는 상황에도 남편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아기들을 데려오자고 말한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먼저 두 아이를 데려오자고 말하지 않은 아내, 아기들을 데려오자는 말에 선뜻 대답하지 않는 자니에게 정말 당신답지 않다고 하며 의아해하기까지 한다. 남편의 말에서 평소 그녀다운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 수 있다. 남편이 바다의 폭풍우와 생사를 다투고 있는 시점에서도 거친 폭풍우를 지나 이웃에까지 발길을 나누는 사람이다.

시몬은 이미 죽은 후였지만 아기들은 구할 수 있었다. 늦었지만 더 늦지는 않은 것이다. 이 정도가 이상적인 이웃의 거리가 아닐까? 아기들은 이제 가족이라는 온전한 책임의 영역 안에서 물질적으로는 여전히 빈곤하지만, 사랑과 신뢰가 충만한 가정 안에서 자라게 될 것이다.

빅토르 위고는 유언장에 `신과 영혼, 책임감. 이 세 가지 사상만 있으면 충분하다. 적어도 내겐 충분했다. 그것이 진정한 종교이다. ...... 진리와 광명, 정의, 양심, 그것이 바로 신이다.'라고 썼다. 그리고 극빈자들의 관 만드는 재료를 사는 데 쓰이길 바라며 가난한 사람들 앞으로 4만 프랑을 남겼다고 한다.

이웃 아파트 어딘가에 싸우는 부부가 산다. 다투는 소리가 아파트 단지를 흔들면 그들의 사연을 들으려고 사위가 조용해지는 듯하다. 시끄럽다가도 무슨 아픈 사연이 있을까 안쓰러워지기도 한다. 사람들이 서로 악다구니하는 모습은 사람들의 마음을 황량하게 만든다. 그러나 아주 가끔 들려오는 이 부부의 소리는 매일 들려오는 `다투는 세상' 소식에 비할 바가 아니다. 전파라는 확성기에 대고, 반복하고, 또 여러 사람이 다투어 재생산하고, 서로 진리와 양심과 정의를 주장한다. 이들의 외침을 듣는 것만으로 세상은 점점 황폐해지는 듯하다.

아가들의 옹알이, 놀이터에서 들려오는 아이들 소리, 노인들이 산책하는 발걸음 소리,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새 소리, 좋은 소리의 파동은 둥글게 둥글게 퍼져 나가 온몸 깊은 곳까지 전달되어 잔잔한 평화와 희망의 에너지로 머문다.

창백한 햇살을 알뜰하게 모아 보랏빛으로 피어난 쑥부쟁이꽃, 서서히 초록을 부수며 붉게 노랗게 주어진 빛으로 아름다운 마지막을 준비하는 단풍, 겨울의 쉼을 준비하는 나무들은 개체의 책임감이 자연을 유지하는 힘이란 것을 배우지 않고도 해낸다. 이 가을에 풍요로운 사람들을 만나 나다움의 목소리에 조용히 귀 기울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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