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한 통
전화 한 통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21.10.27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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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인간들의 생로병사(生老病死)와 아귀다툼을 불가에서는 고해(苦海)라 했습니다.

폭풍과 폭우와 암초가 도사리고 있는 고통의 바다, 그걸 건너는 게 인생이라고.

그런데도 사람들이 용케도 살아가는 건 저마다 신묘한 다섯 가지 통을 지니고 있어서입니다.

인류를 유지하고 문명을 발전시키면서 말입니다.

만사형통, 운수대통, 의사소통, 요절복통, 전화 한 통이 바로 그것 입니다.

아시다시피 만사형통과 운수대통은 하늘의 도움이 있어야 되는 적어도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해야 가질 수 있는 통입니다.

모든 것이 뜻대로 잘됨이 만사형통이고,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천운(天運)과 기수(氣數)가 크게 트여 이루어지는 게 운수대통이기 때문입니다.

하여 만사형통과 운수대통은 축복의 다른 이름입니다.

의사소통과 요절복통은 사람과 사람 관계에서 형성되는, 대인관계가 좋아야 가질 수 있는 통입니다.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뜻이 서로 통함이 의사소통이고, 재미있고 우스워서 허리가 끊어질 듯이 배가 아플 정도로 크게 웃는 게 요절복통이기 때문입니다.

하여 의사소통은 신뢰와 관계돈독의 통로이며, 요절복통은 건강과 행복을 증진하는 윤활유입니다.

전화 한 통은 문자 그대로 누군가에게 전화 한 통 걸고, 누군가에게 전화 한 통 받는 겁니다.

누구나 갖고 있는 통이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든 걸 수 있고 받을 수 있는 통입니다.

전 국민 손 전화(핸드폰 또는 스마트폰) 사용시대라 더더욱 그렇습니다.

하여 전화 한 통은 안부를 묻고 사랑을 주고받는 관심의 다른 이름입니다.

이 다섯 통 중에 특별히 전화 한 통에 주목하는 건 세태의 안타까움 때문입니다. 아니 전화 한 통에 목마른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입니다.

자식을 출가시켰거나 자식을 유학 보낸 부모들이 그렇고, 독거노인들과 소외된 이웃들이 그렇습니다.

대학 강의 때 제자들에게 부모님께 전화 거는 빈도를 거수로 물었는데 결과가 충격적이었습니다. 하루에 한 번쯤 전화 건다는 학생은 전무했고, 사흘에 한 번 정도 건다가 10%였는데 모두 여학생이었고, 일주일 한 번 건다가 30%, 한 달에 한 번 정도 건다가 40%, 용돈 떨어지거나 용건이 있을 때 건다는 학생이 20%였습니다.

연인과 친구들과 동호인들과는 하루에 수십 번씩 전화하고 카톡도 주고받으면서 부모님한테는 이처럼 인색하기 그지없습니다.

부모는 자식이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못된 친구와 어울리지는 않는 지, 어디 아픈 데는 없는 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자식은 부모의 이런 마음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제자들을 나무랄 수 없었습니다. 전화 자주하는 게 효라고 넌지시 말하고 싶었지만 그마저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요즘 세태가 그러하니 우리 때는 조석으로 부모님께 문안인사를 올렸노라 말해 무슨 소용 있으리.

대학생들도 이럴 진데 출가한 자식과 며느리는 오죽하겠습니까?

하여 무소식이 희소식이겠지 하며 아들 며느리에게 먼저 전화 겁니다. 날씨 추운데 잘 지내냐고, 몸은 어떠냐고 말입니다.

이조차 귀찮아하면 전화걸기 거북할 텐데 싫은 내색하지 않고 반갑게 받아주니 감사히 여깁니다.

아무튼 스마트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는 수없이 많은데 막상 전화를 걸라치면 선뜻 걸만한 사람이 없어 망연자실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땐 군중 속에 고독보다 더 깊은 고독감이 엄습해옵니다.

각설하고 누군가와 마음 편히 전화 한 통 걸 수 있고 전화 한 통 받을 수 있다는 건 축복이고 잘 살았다는 반증입니다.

전화 한 통. 자살할 사람도 살리는 마력의 창입니다. 관심의 비타민이자 사랑과 우정의 오작교입니다.

첫눈 같은 전화 한 통, 단비 같은 전화 한 통, 샛별 같은 전화 한 통 걸고 싶고 받고 싶습니다. 그대여!

/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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