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를 넘다
고비를 넘다
  • 이영숙 시인
  • 승인 2021.10.24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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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이영숙 시인
이영숙 시인

 

고비 사막을 행군할 때 좀 더 어려운 고비 지점이 있듯이 우리의 인생 계곡에도 유달리 험난한 고비 능선이 있다.

인간의 괴력은 고비의 능선에서 대부분 민낯의 원초아 모습을 보인다. 그 자신의 가려진 민낯을 인정하지 못하면 고비를 넘어서지 못하고 절망을 선택한다. 구부러진 길처럼 알 수 없는 미래의 시간을 이어가는 시간의 문고리는 고비라는 원형과 멀지 않다. 실상 고비는 추위로 너덜거린 겨울 넝마 같은 모습으로 다가오지만 그 고비의 순간들을 딛고 연단된 것들은 강력한 다이아몬드가 된다.

고비(Gobi)는 몽골어로 풀이 자라지 않는 거친 땅, 사막을 의미한다. 황사의 발원지로도 알려진 이곳은 몽골고원 내부에 펼친 광활한 사막으로 동서 길이가 무려 1,600km이다. 수많은 순례자가 이곳을 지나갔고 무수한 마라토너들이 이곳을 달리며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2016년 마라토너 디온 레너드와 사막을 달리던 한 마리 유기견의 조우는 사막의 고비 능선에서 만난 고비 다이아몬드 커플이다.

인생이라는 공간적 배경도 수많은 고비 사막으로 펼쳐있다.

그 길이와 면적을 물리적인 수치로 환산하긴 어렵지만, 그 고비라는 사막을 잘 딛고 넘어간 사람들로 인류 문화는 이 만큼 꽃피웠으리라.

지금 바로 위 언니가 고비 사막을 넘는 중이다. 늘 먹거리와 운동으로 건강관리를 힘써 오던 사람인데 열흘 전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혈압 수치가 170을 웃도는 데도 혈압약 복용을 무시하고 음식으로 조율하며 지내더니 급기야 쓰러져선 119를 불러 대학병원에 실려 서 갔고 고난도 위험 수술이라 다시 다른 대학으로 이송돼 흉부대동맥 수술을 받았다. 병원이라면 상갓집처럼 생각하던 언니가 인생 최대의 고비를 맞고 중환자실에서 고비사막을 건너고 있다.

하루 이틀 일주일이 지나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언니를 면회 한 번 못하고 망연자실 기다리는 동안 서고에서 안상학 시인의 시집 《남아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을 꺼내 읽었다. 심경 탓인지 <고비의 시간>이 눈앞에 머문다. 중환자실에서 의식 불명의 상태에서 운명의 신과 사투를 벌이며 고비의 시간을 넘고 있을 언니를 위해 두 손을 모았다.

깊은 감정이입 탓인지 시를 읽는 내내 언니가 겪었을 극심한 가슴 통증을 느낀다. 시적화자가 넘어서는 그 고비가 언니의 상황과 오버랩된 까닭이다. 시적화자의 진술처럼 내가 나비 한 마리 날아들지 않는 냉랭한 시를 쓸지라도 언니는 항상 동생의 시에서 향기를 듬뿍 맡는 가장 아름다운 나비이며 일등 독자였다.

시 속 문장처럼 “시간과 거리를 물으면 금방이라는 말밖에 할 줄 모르는 운전기사와 길을 잃어도 쥬게르 쥬게르(괜찮아, 괜찮아)만 연발하는 가이드” 가 있다는 몽골고원 고비사막을 넘고 있을 언니에게 “쥬게르, 쥬게르”를 전하며 디온 레너드가 사막의 유기 견을 만나 고비사막을 넘어갔듯 언니에게 닥친 고비사막을 잘 넘어가길 바라며 언제 읽을지 모르지만 기운 내라는 카톡을 남겨둔다.

지금 인생의 가장 험한 고비 사막을 행군하는 순례자, 겨울을 지나고 봐야 솔이 푸른 줄 안다고 우리는 지금 우리의 맏이 언니에게로 온통 삶의 회로를 집중하는 중이다.

남아있는 날들은 모두 꽃피울 내일이라는 말을 읽었다는 표시로 1이 사라질 그날, 고비를 넘긴 언니의 내일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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