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덥잖은 지방살리기 대책
미덥잖은 지방살리기 대책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1.10.24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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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행정안전부가 최근 전국의 89개 시·군·구를 인구 감소 지역으로 지정 고시했다. 충·남북 15개 지자체도 그대로 뒀다가는 지도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는 이 우울한 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면서 정부는 10조원을 10년간 연차 투입해 지방 공동화를 막겠다고 밝혔다. 지방이 말라 죽어가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지 20년이 지났으나 정부가 현상을 인정하고 구체적 액션을 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가 국가적 위기를 절감하기 시작했다고 평가할 만 하지만 때늦은 진단이고 부실한 처방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5년 전 일부 전문가들이 인구 감소와 지방 이탈이 계속 진행될 경우 오는 2400년쯤 부산을 탈출해 서울로 향하는 이주 행렬을 끝으로 대한민국의 지방은 완전히 소멸할 것으로 전망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은 사막으로 둘러싸인 외로운 섬으로 남아 350년 정도 더 존재하다가 2750년쯤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그 때는 설마 했지만 인구 감소세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지금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주장이 됐다. 정부의 다급한 대책이 나온 까닭을 짐작할 만 하다.

정부가 부랴부랴 꺼내 든 대책을 보노라면 그동안 수십조원을 쏟아붓고도 참담한 결과에 그친 출산정책이 떠오른다. 천문학적 투자에도 불구하고 지금 대한민국은 지구상에서 실질 인구가 줄어드는 거의 유일한 나라가 돼버렸다. 그 와중에도 서울·인천·경기, 이른바 수도권 인구는 꾸준히 늘어 전체의 과반을 돌파했다. 출산율은 국가 존립을 위협할 정도로 떨어졌고 수도권과 지방의 인구 격차는 더 벌어졌으니 낙제점을 면하기 어려운 시책이 됐다.

그렇다면 정부의 이번 지방 살리기 대책이 출산정책의 실패를 만회할 만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그 재판이 되지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정부는 인구 감소 지역으로 지정한 89개 지자체에 10년간 1000억여원씩을 지원해 소멸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겠다고 밝혔다. 찔끔찔끔 언발에 오줌누기 식으로 자자체에 배분하는 예산 집행방식도 미덥잖지만 알맹이 없는 방법론 역시 믿음이 가지않기는 마찬가지다.

지방 살리기 해법은 재화와 사람, 기회를 독식한 수도권의 이권을 지방으로 분할하는 것 뿐이다. 지금까지 유일하게 약발을 받은 정책이 공공기관 이전이었다. 정부가 1차로 공공기관 153개를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수도권 인구가 7년 동안 제자리 걸음을 했다. 지방을 살리려면 지방이 아니라 수도권을 손봐야 한다는 얘기다.

의지도 의심스럽다. 민주당은 개헌을 해서라도 청와대와 국회를 세종으로 이전하겠다고 호언했지만 세종에 국회 분원을 설치하는 국회법 개정에만 10여년이 걸렸다. 실제 분원이 언제 설치될 지는 기약도 할 수 없다. 300여개를 목표로 한 2차 공공기관 이전도 여당이 장담한 지 4년이 넘도록 진전이 없다. 이 문제에 있어서 한 번도 주도적 역할을 해보지 못한 국민의힘에는 달리 할말이 없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얼마 전 청주에서 지역균형발전 대책으로 서울대 학부의 지방 이전을 제시한 바 있다. 서울대를 선진국의 유수한 명문대 처럼 대학원 중심으로 키우고 학부는 지방으로 옮기자는 주장이다. 서울대를 글로벌 명문으로 키우고 지방에도 양분을 보충하는 효율적 대안이다.

김 전 부총리는 “엄청난 저항과 반대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기득권 세력의 `엄청난 저항과 반대'를 무릅쓴 정책이 아니고는 인구의 지방 이탈을 막을 방도가 없다. 말단 혈관이 말라붙어 피가 심장으로 역류하는 환자에게 심장수술이 아니라 부분 수혈을 처방한 돌팔이 의사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환자를 살릴 생각은 있는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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