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라 속에서의 영원 3
찰라 속에서의 영원 3
  • 반영호 시인
  • 승인 2021.10.21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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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반영호 시인
반영호 시인

 

식물과 동물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식물은 스스로 양분을 만들어 살아가고, 동물은 스스로 양분을 만들 수 없으므로 다른 생물에 의존하여 살아간다. 식물은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므로 이동하지 못한다는 게 식물과 동물의 일반적인 정의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넝쿨 식물은 비록 기어서 가지만 이동하며 살아가는 특징을 가졌다.

그런데 넝쿨식물 같기도 한데 나무도 있으니 바로 등나무이다.

왼쪽 길 오른쪽 길 어느 길이 바르던가/모습은 비슷하나 본성이 서로 다른/칡 갈葛字 등나무 등藤字 꼬인 저 운명

오른쪽 감아올려 돌아가는 칡이나/왼쪽으로 에워싸는 고집통 등나무나/만나면 뒤엉키면서 제 신세를 옥죄는

비비고 쓸어안고 사랑해선 안 될 사이/하지만 뒤엉켜도 배려하는 삶도 있네/억만 겁 세월 갔어도 어지러운 저 속내들

권순갑의 시조 갈등이다. 갈등의 갈(葛)은 야산에 많은 덩굴식물인 칡을 의미하며, 등(藤)은 등나무 덩굴이다. 그런데 칡과 등은 서로 반대로 왼쪽과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가는 성질이 있는데, 두 가지 식물을 함께 심어 놓으면 함께 얽히어 풀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여기에서 유래하여 사람 사이의 관계나 일이 까다롭게 얽힌 것을 갈등이라고 한다.

5월이면 쉼터 여기저기에서 연보랏빛의 아름다운 꽃이 수없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등나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오른쪽 감기가 전문인 등나무는 아까시나무 비슷한 짙푸른 잎을 잔뜩 펼쳐 한여름의 뙤약볕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을 만들어준다. 이어서 열리는 보드라운 털로 덮인 콩꼬투리 모양의 열매는 너무 짙푸른 등나무 잎사귀의 느낌을 부드럽게 해준다. 콩과 식물이라 거름기 없이도 크게 투정부리지 않고 아무 데서나 잘 자라는 것도 등나무가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다. 이렇게 등나무는 예쁜 꽃으로 우리 눈을 즐겁게 하며 쉼터의 단골손님으로 친숙한 나무다.

그러나 자람의 방식은 사람들의 눈에 거슬린다. 등나무는 주위의 다른 나무들과 피나는 경쟁을 하여 삶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손쉽게 다른 나무의 등걸을 감거나 타고 올라가 어렵게 확보해놓은 이웃나무의 광합성 공간을 혼자 점령해버린다. 칡도 마찬가지로 선의의 경쟁에 길들어 있는 숲의 질서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사람 사이의 다툼을 칡과 등나무가 서로 엉키듯 뒤엉켜 있다고 하여 갈등(葛藤)이라 한다. 또 등나무는 홀로 바로 서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무를 감고 올라간다. 옛 선비들은 등나무의 이와 같은 특성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가장 멸시하던 소인배에 비유하기도 했다.

갈등을 빚는 나무이든 소인배 나무이든 등나무만큼 쓰임새가 많은 나무도 없다. 줄기는 지팡이를 만들었고, 가는 가지는 바구니를 비롯한 우리의 옛 생활도구를 만들었다. 껍질은 매우 질겨 종이의 원료가 되었다. 송나라 사신이 쓴 《고려도경(高麗圖經)》1) 에는 “백접선(白摺扇)은 대나무를 엮어서 뼈대를 만들고 등지(藤紙)를 말아서 덮어씌운다”라고 나와 있다. 부산 범어사 앞에는 천연기념물 176호로 지정된 등나무 군락이 있는데, 이는 스님들이 종이를 만들기 위해 가꾸고 보호한 흔적으로 짐작하고 있다.

나는 칡덩굴과 등나무의 갈등을

“뒤엉켜 더불어 사는 인간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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