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 김금란 기자
  • 승인 2021.10.20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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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김금란 부국장
김금란 부국장

 

서러운 세상이다.

가진 게 없어서, 못배워서, 취직 못해서, 잘 나지 못해서, 실패해서 서러운 일 투성이다.

표심을 잡기 위해 고개 숙이는 정치인과 달리 서민들은 먹고 사는 게 뭐라고 고개 숙이며 산다.

한 때`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신조어가 유행했다.

취업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은 문과계열 졸업생들이 지은 죄 없이 고개 숙이게 만들었다.

문과생들은 꿈은 캠퍼스를 나서는 순간 깨진다. 문과생들의 아픔은 취업률에서 드러난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2019년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취업통계조사'결과를 보면 인문계열 취업률은 56.2%에 그쳤다. 인문계열 취업률은 고등교육기관 전체 평균 취업률(67.1%)보다 10.9%p 낮다. 가장 높은 취업률을 기록한 의약계열(83.7%)과 비교하면 27.5%p 차이가 난다. 공학계열 69.9%, 자연계열은 63.8%, 예체능계열 64.5%보다도 10% 가까이 낮은 취업률을 나타냈다.

문과라서 고개 숙이는 현실에서 더 슬픈 일은 10년 뒤 미래의 계열별 학위 가치에서도 인문계열 점수가 가장 낮다는 점이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올해 발표한`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청년층의 인식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들이 생각하는 인문계열 학위의 가치 점수는 현재 4.2점이지만 10년 뒤에는 2.84점으로 나타났다. 10년 뒤에도 의약계열은 3.07점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교육부가 학생들의 재능, 적성에 맞는 진로설정에 도움을 주겠다며 2025학년도부터 고교학점제를 전면 시행해도 취업시장에서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면 학위는 그저 종잇장으로 전락할 뿐이다.

특성화고 학생들 사이에서는 `특송합니다'(특성화고 다녀서 죄송합니다)라는 자조어가 들려온다.

잊을만하면 터지는 특성화고 실습생들의 사망사고가 최근 또다시 터졌다. 여수 특성화고 현장 실습생 사망사고가 발생하자 교육부는 또다시 호들갑을 떨었다.

현장실습생 사고와 관련해 교육부와 고용노동부는 재발 방지 및 직업계고(특성화고·마이스터고·일반고 직업계열) 현장실습 제도 보완을 위한 후속 조치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공동조사단을 꾸려 사고 경위를 비롯해 현장실습 운영 지침 준수와 산업체의 안전 관리 여부 등을 조사했다. 사후약방문 정책을 반복하면서도 사고는 근절되지 않는다.

특성화고등학생 권리연합회와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은 현장실습생도 노동자라며 안전한 현장실습 보장을 촉구하고 나섰다. 전국에서는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며 사망한 홍 모 군을 추모하는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기술강국을 외치면서도 학벌지상주의를 선호하는 사회에서 특성화고 학생들은 부모에게, 자신에게 죄스런 마음을 갖고 산다. 우리 사회는 왜 특성화고 학생들이 `특송합니다'라는 말 대신 `특별합니다'라는 마음을 갖게 하지 못했을까?

힘겹게 코로나19 터널을 지나가는 국민, 문과라서 죄송한 문과졸업생, 특성화고 다녀서 고개 숙인 학생들에게 정작 정치인들은`정송합니다'(정치인이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정치인들에게 국민의 삶은 안중에 없다. 내년 3월 치러질 대선을 향한 그들만의 리그만 보일 뿐.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가 최근 발간한`트렌드 코리아 2022'에 따르면 내년에 대한민국을 지배할 소비트렌드 중 하나가 머니러시(Money Rush)다. 금광을 찾아 미국 서부로 몰려간 골드러시(Gold Rush)처럼 우리는 주식, 비트코인, 투잡, 쓰리잡, 갭투자 등 돈을 줍기 위해 쫓아 다녀야 한다. 내일이 두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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