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는 것의 즐거움
읽고 쓰는 것의 즐거움
  •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 승인 2021.10.20 19: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교육현장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생활이 단조로워졌다. 아니 일부러 단조롭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 정확하다. 수업은 월요일과 화요일의 주 초반에 집중하고, 학생들과 논문 읽는 시간은 학생에게 맞추되 공통으로 논문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은 금요일 늦은 오후와 저녁에 주로 한다. 아침엔 일어나자마자 70~90분 정도 걷기와 뛰기를 반복하는 인터벌 운동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단골 커피집에서 샷을 추가한 산미 있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테이크아웃으로 주문한다. 점심 후 독서나 수업 준비, 저녁 식사 후 산책과 글쓰기를 주로 한다. 매일 그렇다. 하루 루틴만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 올 때 이용하는 열차 시간도 정해져 있다. 아침이면 7시 30분 출발, 저녁에는 저녁 7시 35분 출발(심지어 열차의 호실이나 좌석마저도 특정하고 싶지만 그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열차를 타면 신문을 훑어보듯 읽고, 좋은 기사나 구절은 태블릿에 써둔다. 두고 읽으면 좋은 읽을거리가 되니 말이다. 50여 분 남짓한 이동 시간이 빡빡하다. 한 주간의 삶을 이렇게 적어놓으니 움직이고, 보고, 읽고, 쓰는 일의 반복처럼 느껴진다. 움직이고 보는 것이야 노력하지 않아도 할 수 있지만 읽고 쓰는 일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읽고 쓰기, 그런데 이게 정말 중요하긴 한가보다.

얼마 전 독일의 한 매체 보도에 따르면 읽기와 쓰기가 자주적이고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라고 한다. 움직이고 보는 것이 자주적이고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 필수 요소 같은데 읽고 쓰기가 그렇다니 의외 아닌가?

안야 칼리첵 독일 연방 교육부 장관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사람들이 감염으로부터 자신과 다른 사람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독립적으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고 강조하면서 문해력이 부족한 낮은 성인에게는 약 설명서, 질병 정보, 또는 의학 용어가 높은 장벽이 되는 반면에 읽기와 쓰기를 잘하는 사람은 자신의 건강을 더 잘 돌볼 수 있다고 밝혔다.

독일에서는 10월 초부터 문해율이 낮은 성인들 대상으로 정보 캠페인을 시작한다고 한다. 약병에 적힌 `눌러서 여시오'를 못 읽어서 생명을 잃은 사람의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읽기와 쓰기의 실제적 가치는 이런 데 있구나 싶다.

하지만 읽기와 쓰기의 가치에 대한 다른 의견도 있다. 영국의 한 정치철학자는 교육은 한 인간의 삶에 `대화'가 일어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자신이 내는 목소리가 무엇인지 자각하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여러 가지 고려사항에 비추어 이해하고 그에 대한 반응으로 자신의 행위나 이야기하기(발화)를 선택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대화는 결국 대화의 장에 쓰인 서로의 이야기를 읽어내는 과정 아니겠는가? 자신의 이야기를 자기의 말로 쓰고 또 자기뿐 아니라 타인의 이야기를 읽고 이해하는 것, 그것이 교육이라는 것이다.

약 설명서나 의학 정보를 읽고 쓰는 일처럼 무슨 일의 실용적인 가치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바로 알 수 있다. 생명이나 이익과 직결되기 때문에 그것과 관련된 교육 프로그램이나 캠페인을 한다고 하면 그 가치를 쉽게 수용하게 된다. 그러나 읽고 쓰는 일의 가치는 약 설명서나 정보를 읽는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류를 대화로 입문시키는 데 있다.

오늘도 아침 7시30분 열차로 학교에 오면서 훑듯이 신문을 읽었다. 그리고 마음에 와 닿는 한 구절을 태블릿에 적어 두었다. When they go low, we go high. 우리말로는 `그들은 저급하게 가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가자'. 어쩌면 인류가 교육으로 이끌어 내야 하는 대화의 마음은 이런 마음이 아닐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