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벌 침만큼 아픈 쐐기 쏘임
말벌 침만큼 아픈 쐐기 쏘임
  • 우래제 전 중등교사
  • 승인 2021.10.20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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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들려주는 과학이야기
우래제 전 중등교사
우래제 전 중등교사

 

게으른 농부는 남보다 늘 늦장구를 친다. 호두는 보통 추석 전후에 턴다. 그러나 난 호두 겉껍질이 쩍 벌어질 때까지 기다린다. 이때 털면 떨어지면서 겉껍질이 저절로 부서져 알토란같은 호두만 주우면 되기 때문이다. 예전에 덜 여문 호두를 따서 시멘트 바닥이나 돌에 박박 문질러 겉껍질을 벗기다 보면 손에 시커먼 물이 들곤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에 비하면 먹거리가 너무 많은 탓인지 호두가 그리 인기 있는 먹거리가 아닌 모양이다. 아무튼 느긋하게 겉껍질이 벌어질 때를 기다리다 긴 장대와 양동이를 들고 호두나무를 찾았다. 그런데 호두나무 아래를 지나가는 순간 `따끔'정신이 아득하다. 쐐기를 쏘였다.

쐐기나방은 세계적으로 850여 종이 있고, 우리나라에는 갈색 쐐기나방, 노랑 쐐기나방, 배나무 쐐기나방, 꼬마 쐐기나방, 장수 쐐기나방 등 25종이 알려져 있다. 쐐기벌레는 쐐기나방의 애벌레를 말한다. 대체로 몸은 납작한 상자 모양이다. 몸의 마디마다 양쪽으로 쏘는 털(자모, 刺毛) 다발이 있다. 독침의 끝은 작살모양으로 사람 피부에 한번 박히면 빠지지 않는다. 일종의 자기방어 수단이다. 이 독침에 쏘였을 때 아프고 아리고 따가운 것은 쏘여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에는 외국의 쐐기벌레처럼 생명을 위협할 만한 것들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쐐기도 알레르기가 심할 경우 병원을 찾는 것이 좋을 듯하다.

보통 쐐기벌레의 애벌레들은 참나무, 감나무, 배나무, 사과나무, 벚나무 등 나뭇잎을 갉아먹어 나무를 말라 죽게 하는 피해를 주기도 한다. 어느 정도 자라면 애벌레는 누에처럼 입에서 실을 내어 나뭇가지 사이에 계란 모양이나 아주까리 열매 모양의 딱딱한 고치를 만들어 그 속에서 번데기 상태로 겨울을 난다. 크기는 콩알보다 조금 큰 정도로 예전에는 이 고치를 모아 두었다가 입술이 트는데, 아이들이 침을 많이 흘릴 때, 아이들이 놀랐을 때 치료에 효과가 있다 하여 번데기를 구워 먹이기도 하였다. 보통 곤충은 불완전변태나 완전변태를 하는데 쐐기는 알, 애벌레, 번데기, 성충의 순서로 완전변태를 하는 곤충이다.

쐐기벌레가 나를 찾아 쏜 것은 아니다. 이들은 건드리지 않으면 쏘이지 않는다. 건드린 잘못은 내가 했지만 나뭇잎 뒤편에 숨어 있는 너도 잘못이 있다. 가차없이 처단하였지만 아리고 쓰린 것이 참기 쉽지 않다. 블루베리를 따다 팔에 쐐기 쏘인 것은 그런대로 나은 편이다. 오늘 이마에 쏘인 것은 유난히 독하다.

가을이 깊어지며 이놈들의 독도 심해진 것일까? 쏘인 자리에 계속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어려서는 쐐기 쏘인 자리에 침만 바르고 잘도 참아 냈는데 이제는 어렵다. 약이라도 사서 발라야겠다. 이놈들 때문에라도 내년엔 살충제를 써야 할까 보다. 그럭저럭 알 호두가 양동이에 다 찼다. 마침 가을비도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한다. 나머지는 내일로 미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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