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미소
악마의 미소
  •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 승인 2021.10.17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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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모두가 `미소'라 하면 아마 `아름답다.'라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미소, 무언가를 이뤄냈을 때 떠오르는 성취감의 미소, 사랑하는 사람을 보며 나도 모르게 짓는 설렘의 미소까지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밝은 미소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지금으로부터 약 26년 전 1995년 6월, 엄청난 인명피해를 일으킨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일어났다. 그 당시 백화점 소유주의 인류애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인터뷰에 많은 이들이 분노했고, 무너진 건물의 잔해 밑에서 몇 날 며칠을 버티고 버텨 살아남은 생존자들을 보며 사람들은 환호했다. 그렇게 모두가 내 일인 것처럼, 혹은 내 가족의 일인 것처럼 울고 웃는 동안 아무도 모르게 슬며시 미소 짓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악마의 미소를 한 절도범들이다. 이들은 누군가의 가족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동안 자신들을 자원봉사자로 위장한 채 백화점이 무너지며 사방에 흩어진 명품을 주워갔다고 한다. 게다가 그 절도범의 숫자는 무려 4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어떤 생각이 드는가? 나는 어떤 생각을 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숨이 턱 막혀온다.

그런데 이런 악마의 미소는 비단 엄청난 재해나 범죄가 일어났을 때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나는 가족과 어떤 장소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말 그대로 더위가 절정에 다다른 듯한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마스크 안에 뚝뚝 떨어지는 날씨였다. 그때, 누군가 내 등을 떠미는 느낌이 들었다. 뒤를 돌아보니 나이가 지긋한 여성 두 분이 비키라는 손짓을 보이셨다. 앞에 일행이 있나 싶어서 양보해 드렸지만 그 두 분은 자연스럽게 줄의 맨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셨다. 내가 황당해서 넋을 놓고 있는 사이 큰 소리가 들려왔다.

“뭐 하시는 거예요? 원래 자리로 돌아가세요.” “나도 30분 넘게 기다렸어, 너무 더워서 앞으로 온 거라고”

“여기 있는 사람들 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어요. 누군 안 더워요?”

당연하게 모든 시선이 그들에게 쏟아졌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그 후로도 몇 명의 항의가 있었지만 그들은 대답할 의지도, 피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 직원은 적극적으로 그 상황을 해소해 주지 않았고, 우리 가족을 비롯한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결국 그들은 당당하게 입장했다. 못된 이기심으로 쟁취한 그들의 순서를 너무나 부러운 듯 쳐다보는 아이들의 시선이 묻는 듯했다. `엄마, 저 사람들은 왜 먼저 들어가요?'

용암보다 뜨거운 화가 속에서 부글부글 끓었다. 그런데 그 순간 그들이 웃었다. 아이들은 서늘해진 분위기에 땀을 훔치며 하고 싶은 말도 못 하고 눈치만 보고 있는데 당당하게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아서는 드디어 입장했다면서 신나서 자기들끼리 웃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살면서 가장 적나라하게 마주한 일상 속 악마의 미소였다. 차라리 자신들이 노령이어서 더 이상 줄을 서서 기다리기가 어려우니 양해해달라고 말했다면 기꺼이 누군가는 양보해 주었을 것이다.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쭈뼛쭈뼛 아이가 던진 “아까 그 할머니들이 새치기한 거 맞아?”라는 질문에 같은 어른으로서 부끄러움은 왜 내 몫일 수밖에 없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이제는 몸의 일부가 된 듯한 마스크 덕분에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도 어여쁜 사람의 얼굴을 잘 볼 수가 없다. 그렇다고 새하얀 마스크가 당신의 이기심까지 가려줄 것이라고 믿는다면 오산이다. 마술을 부린 듯 당신이 짓는 악마의 미소는 더 잘 보인다는 것을 당신만 모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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