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 문명의 불꽃
직지, 문명의 불꽃
  •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박사
  • 승인 2021.10.1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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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여는 창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박사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박사

 

문화도시 청주의 뿌리는 직지다. 청주의 과거와 현재, 미래로 뻗어가는 줄기는 직지에서 출발한다. 직지는 청주의 긍지이자 나라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기록문화유산이다. 청주는 직지를 세상에 알리고 시민의 자부심으로 키우기 위해 20년간 수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러한 수고 덕분에 직지는 유네스코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되고 유네스코직지상이 제정되었으며, 고인쇄박물관, 금속활자 주조전수관, 근현대인쇄전시관이 지어지고 직지문화특구가 조성되었다. 직지축제가 열리고 직지코리아로 규모가 더해졌다. 직지와 관련된 단체를 만들고 직지세계문화협회가 조직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에 실리고 체험학습으로 전국에서 청주를 방문했다. 세계 인쇄출판과 기록문화 분야 전문가들이 청주를 자유롭게 찾아오고 전문단체가 조직되었으며 세미나와 토론회가 활발하게 개최되었다. 마침내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가 자리 잡게 됨으로써 청주는 명실공히 전 세계 인쇄문화·기록문화 플랫폼 중심도시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또한 직지를 주제로 한 기록문화 창의도시를 비전으로 지역문화 진흥법에 따른 제1기 법정문화도시가 되었고 첫해에 사업성과 1위 도시가 되어 문화도시 청주의 위상을 전국에 알렸다.

직지는 외적으로 이렇게 많이 성장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직지에 대한 시민의 관심은 예전만 못하다. 오랜 사업 추진은 도시에 피로감을 누적시켰다.

가장 아쉬운 것은 직지에 대한 깊이 있는 인식 부족이다. 직지의 등장이 인류 문명사에서 왜 획기적 사건인지, 우리에게는 어떤 가치와 의미를 주는지, 미래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적 사유가 부족하다. 개인과 조직, 지역사회와 국가의 선도적 역량은 사유의 깊이와 비례한다. 직지를 토대로 새로운 사회적 혁신을 이루며 풍요롭고 행복한 사회로 나가려면 직지에 대한 다양하고 깊이 있는 사유가 필요하다.

직지를 구성하는 뿌리는 기술력과 문화력이다. 기술력은 쇠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이고, 문화력은 기술의 쓰임과 방향을 결정하는 나침판이다. 쇠를 다루는 기술력에 어떤 문화력을 담을 것인가? 아니면 어떤 문화력을 기술력으로 구현할 것인가? 에 따라 창조와 진보의 방향이 달라진다. 여러 나라가 쇠를 다루는 기술력을 확보했지만 주로 전쟁 무기로 활용했다. 그러나 우리는 쇠 주조 기술을 인쇄술과 결합해 혁신적인 금속활자 인쇄술을 창안했다. 기록과 정보, 교육과 지식이라는 문화력의 결과다. 창의력의 토대인 인문학적 상상력과 깊은 철학적 사유라는 독특한 문화력을 가진 결과라 할 수 있다.

쇠를 다루는 기술력과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하는 문화력의 결합이, 혁명적인 문명의 진보라는 `금속활자 인쇄술'의 불꽃을 피운 것이다. 금속활자 인쇄술은 획기적인 기록 기술의 혁명으로, 지식의 생성과 보급, 유통과 확산에 새 길을 열었고, 이후 산업혁명, 종교혁명, 시민혁명이라는 사회적 진보와 혁신의 불꽃으로 피어난다. 물론 이러한 혁명을 가능하게 한 것은 구텐베르크 금속활자 인쇄술이다. 아직까지는 고려의 금속활자 인쇄술이 유럽의 금속활자 인쇄술 창안에 영향을 주었다는 명확한 실증증거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영향효과와 관계없이 기술력과 문화력의 통합인 금속활자 인쇄술의 최초 개발자는 우리라는 것이다.

인문학적이고 철학적인 사유의 깊이를 높이는 문화력 향상 활동이 필요하다. 기술의 진보는 문화의 불꽃에서 점화된다. 직지를 통해 과거를 조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미래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직지가 피운 과학기술의 불꽃, 인문철학의 불꽃, 문화예술의 불꽃이 촛불로, 횃불로, 태양으로 번져 나가게 할 수 있도록 시민의 관심과 힘을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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