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키
마음의 키
  • 김기자 수필가
  • 승인 2021.10.13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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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기자 수필가
김기자 수필가

 

늘 아이에 머무르던 나였다. 작은 키와 더불어 눈의 높이마저 낮아 바깥세상을 내다볼 수 없었던 세월이었다. 그래도 울안에서의 삶은 시간이 흐르면서 몸을 지탱해주는 마음의 키가 조금씩 자라나기 시작했다. 발꿈치를 든 채 담장 밖으로 힘껏 고개를 내밀며 여러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내뱉는 가운데 문득 나를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강산이 몇 번씩이나 변했다. 푸르렀던 내 모습도 색이 변하기는 마찬가지다. 가장 실감 나는 것은 현재 살아가는 각양의 마당에서 오랫동안 나와 관계되는 사람들과 거리가 자연스레 뜸해지기도 하며 그 인연이 사라져 간다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충격적인 것은 가까운 이들이 세상을 떠나는 일이었다. 부모형제지간이야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친했던 이웃마저 이런저런 이유로 하늘의 별처럼 되어간 안타까운 사실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슬픔도 갈등도 여러 가지 농도였다. 하지만 날마다 찾아드는 햇살에 그것들은 차츰 희미하게 희석되어 가고 있을 뿐이었다. 단단한 물체가 비바람에 깎이듯 내 마음의 형태도 마모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앞만 보고 치닫던 삶에서 잠시 뒤돌아보는 여유가 생겨났다고나 할까. 담장 밖의 세상은 가늠치 못할 바다였고 오르내리는 질곡과도 같았지만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새롭기까지 했다.

내일이라는 희망의 언어가 나를 에워싸고 있다. 기대어 보니 한층 편안해진다. 높게만 보아왔던 담장의 의미가 저만큼 가라앉은 내 안의 생각을 일으켜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복잡한 듯해도 나름 순리를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였다. 이제껏 세상을 편견과 두려움으로 생각하던 마음 한쪽이 새로운 자리를 마련하느라 바빠지기 시작한다. 발맞추어 육신의 키는 작아질지라도 마음의 키는 언제나 성장을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일고 있으니 어쩌면 다행스럽다.

오늘도 담장 밖은 여전히 흘러가는 물의 모습이다. 그 속에 나도 섞이어 있었다. 지금껏 현실에 비추어 자세히 볼 수 없었던 것들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한층 맑아지는 기분이다. 이 모든 것에는 역시 사람과의 교감이 필수적이었다. 저마다 다를 테지만 내 경우에는 혼자만의 세계에서는 그 허기를 채울 수 없을 것으로 짐작한다. 갑자기 함께 라는 말이 소중하게 들려오는 시간이다. 그동안 소통할 수 없었던 것들과의 거리를 이해하기 위한 눈높이도 곁에서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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