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 하은아 충북교육도서관 사서
  • 승인 2021.10.11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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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하은아 충북교육도서관 사서
하은아 충북교육도서관 사서

 

내가 몸담고 일하는 곳에 변화가 시작됐다. 30년은 더 지난 건물이 새롭게 바뀌고 있다. 사각형 건물 속에 사각형 사무실, 사각형 가구들에 네모진 책들까지 흘러간 대중가요 속에 등장하는 네모의 세상이 다채롭게 변화하려 하고 있다.

이 변화를 위해 공간 전문가 강연을 들었다. 건축가는 “대부분의 담당자와 건축주는 잘 지어 주세요. 잘 만들어주세요 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 결과물은 천편일률적인 잘 지어진 건물이나 집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나에게는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며 코웃음을 쳤다. 내가 꿈꾸고 해보고 싶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라는 생각으로 가슴이 두근거렸었다.

하지만 실전은 달랐다. 하나의 벽을 만들고 없애는 결정에도 수백 번 고민을 해야 했다. 내가 하는 결정에 따라 건물은 30년 혹은 50년 동안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결정에 확신이 없었다. 도서관 건물 평면도 앞에서 나는 한 없이 작아졌다. 나도 “건축가님 잘 만들어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어졌다.

도서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마쓰이에 마사시 지음·비채·2016)는 건물을 만들고 고칠 때 얼마나 사용자 입장에서 고민하느냐에 따라 그곳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 책이다.

일본의 저명한 건축사무소가 공공건축물 그것도 도서관의 설계를 공모하는 과정을 소설로 들려주는 이 책은 지금의 나에게도 도서관이 어떻게 이용자를 만나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소설 속의 건축가들은 이용자가 책을 편안하게 읽을 수 있도록 의자와 테이블을, 운영자 입장에서 책이 잘 발견되고 수장할 수 있도록 서가 디자인과 동선을 고민하고 있었다. 건축가들은 운영자보다 더 자세하고 섬세하게 건물의 용도를 이해하고 있었다.

나는 늘 공간의 사용자였다. 공간의 불편함만 투덜거려봤지 새롭게 만들어가는 입장이 되어보니 내가 가진 공간이 나름나름으로 최선을 다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어 불만만 가득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나는 공간에 대해 잘 이해하고 어떻게 바꾸고자 했는지 철학이 있었던 것일까?

건물은 쓰는 사람의 편의를 위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라는 소설 속 건축 사무소는 주택을 설계할 때도 건축주와의 대화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공간 사용자의 습성과 용도, 이용 목적에 따라 건물의 구조와 동선 층별 구성이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금 공간 교육에서 만났던 건축가 말이 떠올랐다. 잘 만들어진 공간은 운영자가 그 공간에 대하여 많은 아이디어와 용도를 제시했는가에 달라진다는 그의 말을 말이다.

“이 도서관은 책을 찾는 곳뿐 아니라, 별생각 없이 와서 서가와 서가 사이를 걸어다니기만 해도 즐거운 장소로 만들려고 했습니다.”라고 소설 속 건축가는 말한다. 도서관의 기존 엄숙하고 조용한 이미지를 밝고 경쾌하게 만들고 싶다고 나는 생각했다. 이 책의 건축가처럼 나는 즐거운 도서관을 만들고 싶어졌다. 혼자 또는 함께 와서 즐겁게 노닐다 가는 도서관! 내가 꿈꾸는 도서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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