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가 나에게 가르쳐준 것들
내 아이가 나에게 가르쳐준 것들
  •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 회장
  • 승인 2021.09.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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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 이야기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 회장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 회장

 

명절 연휴, 동네 산책을 하는데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 일부러 들은 것은 아니지만 지나는 길 우연히 들려오는 소리에 마음을 두고 온다. 오랜만에 가족이 모여 앉은 풍경을 마음에 그리자니 문득 고인이 된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가 내게 주신 무형의 유산(김선영 작가의 `무례한 상속'을 읽은 후, 마음에 새겨진 무형의 유산)이 내 삶의 곳곳에서 펼쳐지기에 아버지는 안 계시지만 늘 함께 하는 마음이다. 가끔은 사색적이고 문학적인 나의 기질과 나무와 풀과 꽃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은 아버지로부터 온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꽃에 물을 주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문득문득 아버지를 만난다.



`내가 아빠에게 가르쳐 준 것들(글·그림 미겔 탕코, 옮김 심재원)'은 부모로부터 배우고 물려받는다는 너무도 당연한 패러다임을 해체한다. 아이가 아빠에게 가르쳐준다는 의미를 가진 그림책이다. 아이와 아빠가 등장하는 이 그림책의 이야기는 이러하다. 아이는 아빠에게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는 법을 알려주고 느긋해지는 법도 알려준다. 또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으로 데려가기도 하고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기억나게 해준다. 그 외에도 아빠가 되지 않았다면 경험하지 않았을 많은 것들을 경험하게 하고, 잊은 것들을 기억나게 한다. 그리고 비록 자신은 작지만, 아빠가 잘 자라도록 도와주겠다고 한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부모는 사랑과 책임감을 함께 얻는다. 그리고 심리학적으로 기억할 수 없는 자신의 영유아기적 경험을 무의식적으로 재현한다. 부모라는 정체성을 획득하게 되면, 아이는 부모가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된다. 부모에게는 많은 내면의 얼굴이 있다. 이 내면의 얼굴들을 부모가 되어서야 마주하는 것이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성인들과 집단에서 경험하는 이야기 중에 꼭 등장하는 것이 자녀 세대와의 소통에 관한 이야기다. 자녀들이 성장해 독립하거나 가정을 이루고 분리됐지만 가르쳐주고 싶은 것은 줄지 않는다고 전한다. 그래서 가르치는 자리에 위치하게 되고 그로 인해 관계가 소원해지거나 단절되는 아픈 경험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자녀들에게 새로운 것을 배우기도 하고 그들의 정보력과 삶의 자세가 다름에 놀라기도 한다. 다음 세대에게 배우는 것이 서툰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음 세대로부터의 배움을 기꺼이 수용하는 사람이 있다.

어느 노모는 40여 년 결혼 생활을 하며 아내, 엄마, 며느리 역할에 묻혀 집을 비우고 혼자 여행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고 한다, 제사를 이유로 가족의 끼니를 이유로 혼자만의 시간을 늘 미루기만 했던 그녀에게 딸은 틀을 깨고 나오기를 권했다는 것이다. 옆에서 용기를 주고 응원해준 딸 덕분에 태어나 처음으로 자유하고 행복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나를 미완성에서 완성으로 이끄는 것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이전 세대·다음 세대와 함께 공존하는 이 순간이야말로 우리가 존재하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내 아이들은 나에게 정말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내면의 자아실현 욕구를 알아차리게 해주어 공부하게 하고 상담자로 살아가도록 도왔다. 성장하며 자리 잡았던 성격의 구조를 의식하게 하면서 새로운 자아를 만나도록 했다. 그리고 아이와 관계하며 미숙했던 사랑을 온전히 실천하는 기회를 주었다. 매일 매일 나는 성장하고 있으며 아이들과 남편이 가르쳐 준 것들은 너무 많다.

여러분은 어머니에게, 아버지에게, 배우자에게, 아들에게, 딸에게 그리고 누군가에게 무엇을 배우고 가르쳐주었는지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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