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뛴다
가슴이 뛴다
  •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 승인 2021.09.26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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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선다. 엄마와 딸아이가 차례대로 보인다.

추석 연휴에 이어 주말까지 남은 이틀을 두 아이가 다니는 기관이 다 휴업일로 지정해서 하는 수 없이 친정엄마에게 맡긴 탓에 퇴근 후 마주한 모습이다.

나의 엄마는 언제 이렇게 나이가 들었고, 나의 딸은 언제 이렇게 컸는지 새삼스럽게 세월의 흐름이 낯설다. 그렇게도 뜨거웠던 여름의 더위가 처서를 맞이하자마자 기세가 꺾였듯이, 집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짊어지고 가는 나이의 무게가 어느 한순간에 이루어진 것만 같다.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으며 조금은 처연하고, 약간은 체념하듯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 있다.

무언가를 향한 설렘의 마음이다. 어떤 사람을 보며 설레었던 적이 언제였던가, 굳이 이성을 보고 느끼는 감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생기면 그 자체로 두근거리던 마음,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이들이 모여 있는 곳에 소속되고 싶어 애쓰던 마음은 어느 순간 모든 일과를 마치면 더 이상 사람 사이에서 치이고 싶지 않아 집 안에서 소파와 한 몸이 되는 것으로 안정을 느끼는 마음으로 변해 버렸다.

이뿐만이 아니다. 주어진 과업과 책임이 수반되는 어떤 일을 제외하고 진심으로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 있는가 생각해본다. 10대 시절에는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을, 기사를 그렇게도 열정적으로 모았었다.

청춘의 꽃이라 불리는 대학시절에는 주말마다 여행을 가기 위해 금요일 밤부터 신나게 계획을 세우곤 했다.

어른이라고 불리는 나이에 다다른 지금의 내가 생각해보면 참 부질없었고 의미 없었다고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 시절에는 그저 좋다는 이유만으로 그것들이 내 세상의 전부였다. 지금은 좋아하는 연예인도 없고, 여행을 생각하면 출발도 하기 전에 피곤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생각하다 잘못된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든다. 혹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설렘도 총량이 정해져 있어 한 살이라도 더 어리고, 한 살이라도 더 젊었을 때 소비를 많이 한 만큼 지금은 이렇게 무미건조하게 사는 것이 어쩌면 정해진 수순이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지극히 정상이 아닌가 하는 자기합리화 적인 생각에 숟가락을 얹고 싶다.

하지만 기본 전제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을 운전면허에 272번 도전해 결국 취득하신 70대의 할아버지가, 같은 연령대에 한글 공부를 해서 시를 쓰시며 기뻐하신다는 어떤 할머니가 뼈아프게 알려주고 있다.

일상의 모든 색채를 빼앗아 가려는 듯 시곗바늘은 한결같이 무섭게 돌아갔다. 그 사이에 설레고 싶던 마음은 역시 사치였다고 생각하던 어느 날, 도내에서 열리는 독서행사에 내가 애정 하는 작가가 특강을 하러 온다는 소식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갑자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내가 참석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알 수 없는데 홍보 포스터에 적힌 그 작가 이름만으로도 설레었던 것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활활 타오르던 열정과 활짝 열려 있던 사람을 향한 마음은 인생길에 널려 있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때마다 흘리던 눈물에 조금씩 조금씩 꺼져갔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불씨를 붙여보고자 한다. 쿵쾅쿵쾅 가슴이 뛰는 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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