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배의 추억
108배의 추억
  •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 승인 2021.09.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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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영 변호사의 以法傳心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재판에, 강의에, 지역활동 등 이래저래 벌여놓은 일에 정신없다가 모처럼 추석에 며칠 푹 쉬었습니다. 명절 당일 무슨 요사스런 날씨인지 새벽부터 비바람이 휘몰아쳤는데, 그 저녁부터 청명한 하늘에 보름달이 반가워 소원도 빌 겸 과식한 뱃속을 조금이라도 비우고자 집 옥상에서 오랜만에 108배를 올렸습니다.

그래도 軍 생활 10년 가까이 근육질 몸매는 아니더라도 군살이 없게 체력관리를 제법 해왔는데, 이 세속에서의 일상은 욕심만 가득해 비움과는 거리가 멉니다. 108배를 한 번 했다고 번뇌가 소멸하고 비움이 바로 실천되지 않겠지만, 앞으로 더욱 철저한 자기관리를 위해 여름부터 시작한 운동과 조금 덜한 식욕, 간절한 기도는 유지하리라는 다짐입니다.

어릴 때 어머니를 따라 절을 자주 갔습니다. 어머니의 일상인 108배, 심지어 철야기도에서 해내시는 3,000배를 볼 때면 어린 저는 `저렇게 힘들게 절을 왜 하지?'하면서도 어머니의 애틋한 신심(信心)에 가슴이 먹먹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가 흠뻑 땀 흘리는 신심은 결코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어릴 때도 알았습니다. 오로지 가족을 위한 마음이었지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릴 때에는 부모와 학교로부터 받기만 하니 `내가 잘 되어야 한다'는 이기심이 나를 지배한 것이라면, 성장하면서 이제는 가족과 타인을 살필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수험생활이라면 학원과 첨단화되어 있는 동영상 시스템을 이용하는 것이지만, 절에서 수험생활을 한 것은 제가 아마도 마지막 세대일 겁니다. 대학생 때 공부를 허술하게 해서 시험에 계속 떨어지다가 독하게 고시 공부를 하겠다고 1년을 영동 황간면의 반야사(般若寺)로 갔습니다. 솔직히 여기서도 독하게 공부했다고는 볼 수 없고, 오히려 불가의 법도나 이치를 자연스레 익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매일 절밥을 먹으면서도 매일 108배를 하지는 못하고, 화장실 청소도 하고 멀리서 오는 신도들을 황간역에서 모셔 오고 역으로 모셔 가는 처사(處士)의 일을 통해 하심(下心)을 발하고자 했습니다. 반야사의 터가 워낙 세다고 해서 기도발을 위해 사람이 없는 늦은 저녁에 절과 기도를 하면 희한한 기운이 도는 것 같은 기분을 종종 느꼈습니다. 절 마당으로 나오면 쏟아지는 별빛에 넋을 놓아버리고 온 우주에 또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를 한다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자신의 노력에 합당한 보상이 당장 주어지지 않거나 노력의 대가가 단시일에 주어지는 일이 아닐 때 꿈을 위한 노력의 바탕 위에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고 부처님이나 우주 또는 다른 숭배의 대상을 통해 대신 스스로를 위해 주문을 하는 간절함의 표현일 것입니다.

때마다 무언가에 절실함을 느끼고 기도를 할 때 나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만은 아니기를 바랍니다. 순수히 타인을 위한 것이거나 그 타인을 통해 나를 위한 기도일지라도 타인을 매개로 한다면 그 간절함의 소원은 온 우주가 알아주지 않을까요.

/변호사·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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