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가을을 줍다
길 위에서 가을을 줍다
  • 임현택 괴산문인협회 지부장
  • 승인 2021.09.22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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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괴산문인협회 지부장
임현택 괴산문인협회 지부장

 

뜨겁던 여름을 밀어내고 가을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이맘때면 더욱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아니 나이테가 하나씩 늘어가면서 더 애타는 마음이 사무치는 것 같다.

얄궂은 가을비가 오락가락하더니 다행히도 햇살이 쨍쨍 내리쬐는 날, 동산을 오른다. 산자락 여기저기에 `벌초대행'현수막이 펄럭여도 당연하지 싶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벌초대행'현수막이 자꾸 눈에 밟힌다. 언제부터인가 벌초대행이 자연스러워졌고 외려 자손들이 모여 벌초를 하는 모습만 봐도 효심이 지극해 보였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벌초를 하는 날에는 식구들이 모여 잔치하는 날이었다. 자손들이 벌초하는 동안 큰댁 마당에선 솥단지를 걸어놓고 돼지고기를 삶느라 솥뚜껑이 달그락거리며 허연 김을 내뿜었다. 둥그렇게 모여 앉아 삶은 돼지고기를 먹으며 허세가 들어간 무용담부터 소환된 추억까지 꼬리에 꼬리를 문 이야기로 화기애애한 잔칫날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때문인지 자손들이 바빠서인지 벌초대행 서비스는 성황을 이루고 있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임에도 고루한 내 성향 때문일까, 아님 추억을 잡고 싶은 걸까, 고향을 잃은 것 같아 개운치 않고 먹먹하다.

동산 중간쯤 오르자 산자락 군데군데 울려 퍼지는 예초기 소리, 벌초를 하는 모양이다. 점점 가까워지는 소리와 풀내음, 지근거리에서 한 박자 쉬면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등에 짊어진 예초기, 휙휙 폭풍처럼 돌아가면서 칼날에 잘려 풀풀 날리는 잔디를 보니 속이 후련해진다. 멀찌감치 떨어져 갈퀴를 들고 잘린 잔디를 말끔하게 정리하는 또 한 사람, 능숙하게 손발이 척척 잘도 맞는다. 금세 막 씻고 나온 청순한 얼굴처럼 말끔해진 산소를 우두커니 서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벌초를 마친 두 남자, 짊어지고 온 배낭에서 주섬주섬 소주 한 병을 꺼내 잔을 따르더니 나란히 절을 올린다. 그 모습에 고향이 얼비추더니 괜스레 가슴이 뭉클해지고 울컥해진다.

상상만으로도 울컥해지는 고향, 어릴 적 추억을 온전히 간직했던 오래된 집들은 쇠락했고 문명 앞에 빠르게 발전한 고향도 낯선 풍경이다. 마을 어귀부터 경관 좋은 곳엔 귀촌한 주민들의 럭셔리한 주택들, 도시인의 향수가 솔솔 풍기는 여유로운 삶을 즐기고 있다.

반면 뿌리 깊은 나무 같은 나이 많으신 토박이 어르신들은 되레 이방인처럼 데면데면 해지고 뒷방 늙은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고령으로 정보공유도 어렵고 농사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당연하지 싶다. 때문에 `구원투수'로 농사일을 대신할 수 있는 일꾼으로 젊은 외국인들이 조금씩 조금씩 화선지에 먹물 번지듯 스며들어 정착했다.

그렇게 고향마을의 빈자리를 채우면서 공동체를 이뤘다. 고향은 생동감을 찾았지만 뭔가 이상야릇하게 어색한 것이 예전 같지만은 않다. 세대 간의 균형을 깨뜨리는 허점처럼 선주민과 이주민 사이는 어색한 불균형을 이루며 묘한 언발란스다.

동산에서 내려다보이는 자연의 모습이 새롭다. 김창욱 교수는 나이가 들면서 지켜야 하는 것 중 하나가 동안이 아니라 동심이란다. 나이가 들면 자연에 순응하고 고향을 그리며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동심을 잃으면 인상이 바뀌면서 소통이 안 되고, 동심을 잃으면 콧노래가 없어진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계절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한다고 하니 동심은 고향 같은 마음일 게다.

하늘이 구름 사이로 슬쩍 낯가림하는 이 가을, 길 위에서 가을을 줍는다. 지친 일상을 치유하는 고향의 자연 같은 풍광들, 꼭꼭 가슴에 여미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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