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뭐지?
이게 뭐지?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21.09.1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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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룡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읽기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정승 부인이 사라졌다. 전국의 방백들을 동원하여 부인을 찾아보니 지리산 깊은 산 속 화전민과 함께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승이 찾아가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였지만 부인은 제발 나를 그냥 놔두고 돌아가 달라고 애원하였다. 홀로 돌아오면서 하도 기가 막혀 산사의 고승을 찾아가 전생록(前生錄)을 봐달라고 하였다. 
전생에 정승은 거지였고 화전민은 거지가 키우던 개였고 부인은 거지의 몸에 붙어살던 이였다. 양지바른 곳에 앉아 이를 잡는데, 이를 한 마리 잡아 죽이려는 순간 측은한 생각이 들어 이를 개의 털 속에 집어넣었다. 거지는 살생하려다가 자비심을 낸 공덕으로 정승이 되었으며, 이는 정승과 더불어 살다가 개의 몸속으로 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정경부인 자리를 박차고 개였던 화전민과 함께 여생을 살게 되었다.
정승, 부인, 화전민은 인연에 따라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萬物因緣所生) 개인의 뜻은 중요하지 않다. 정승부인이 화전민하고 살고 싶을까? 아닐 것이다. 화전민이 정경부인하고 살려면 얼마나 부담스러웠을까? 사실상 세상만사는 사람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인연은 알 수 없다. 사람 팔자는 알 수 없다. 전생 이야기에서 일차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이것이다.
그거보다 훨씬 황당하면서 중요한 게 있다. 이가 사람이 될 수 있고 사람도 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과학적으로 보면 황당하다. 비과학적이지만 이에 대해 상상력을 발동해보면 흥미로운 일이 생긴다. 이는 사람처럼 생각할 수 없다. 사람처럼 느끼고 계산하고 판단하고 어울리며 살 수 있을까? 못 산다. 그런데 이가 죽었다. 이가 다시 태어날 때는 여러 가지 가능성이 열려 있다. 이로 다시 태어날 수도 있고, 독수리로 태어날 수도 있으며 지렁이로 태어날 수도 있다. 물론 사람으로 태어날 수도 있다. 
x가 이로 태어났다. 이가 죽으면(이로서의 생명을 다하면) x가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다. x는 독수리도 될 수 있고 상어가 될 수도 있으며 지렁이도 될 수 있다. x가 될 수 없는 것이 있을까? 다 될 수 있다. 곧 x는 사람처럼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며 예술적 감수성을 가질 수도 있으며, 개미처럼 자기 몸무게의 몇십 배 되는 것도 끌고 갈 수 있으며, 벼룩처럼 자기 키의 몇십 배를 튀어 오를 수도 있다. x는 독수리가 되어 창공을 유유히 날아올라 먹이를 사냥할 수도 있다. 그 x는 세계를 호령하는 전륜성왕이 될 수도 있으며 바퀴벌레가 되어 음습한 곳에 숨어서 지저분한 것을 먹고살 수도 있다. 하루살이가 될 수도 있고 고래처럼 큰 몸뚱이를 가질 수도 있다.
x는 무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 x는 못할 것이 없다. 모든 걸 다 할 수 있으며 깃들지 않는 곳이 없다. 겨자씨만한 데도 들어가 있고 우주정신으로 있을 수도 있다. 가능성만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전생록에서 보는 것처럼 실제로 이가 되고 사람이 되고 개가 되고 정승이 되고 화전민이 된다.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실제로 구현해 낼 수 있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그걸 모두 구현해낼 수 있는 게 x이다.
무한가능성을 지닌 x가 내가 된다면? 곧 사람이 된다면? 하늘을 날아다닐 수 없다. 물속에서 호흡할 수도 없다. 다른 생명체에 비해서 많은 가능성에 열려 있기는 하지만 x가 가진 무한 가능성을 다 구현할 수는 없다. 지극히 제한된 일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다행이라고? 무한한 가능성을 다 버리고 지극히 제한된 것만을 할 수 있을 뿐인데? x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다 없애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만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 나다. 나는 얼마나 제한된 존재인가? 무한한 가능성이 이 좁은 나에게 갇혀 있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이게(x)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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