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여행계획
특별한 여행계획
  • 정명숙 청주문인협회장
  • 승인 2021.09.15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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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명숙 청주문인협회장
정명숙 청주문인협회장

 

장례식장이다. 상주들의 표정은 덤덤하고 제단 위의 영정사진은 쓸쓸하다. 식사를 담당하는 아줌마들도 무료하다. 문상객이 적은 것도 한몫하고 있다.

이른 아침, 친구 남편의 부고를 전해 들었다. 고인은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치매가 왔다. 거동도 불편해 화장실 출입도 쉽질 않았다. 체구가 작은 친구는 6년이 넘는 세월을 집에서 병시중을 들었다. 결혼 초부터 된바람 속에서 헤어나질 못했던 누나가 나이 들어서까지 고생하는 게 안타까웠던 친정 동생은 시설로 보내라고 성화를 댔지만, 아이를 대하듯 살뜰하게 보살폈다. 그녀라고 속이 좋아서 그랬을까.

내 삶도 평탄하지 않으면서 친구의 삶을 들여다보면 나도 모르게 울화가 치민다. 그녀의 남편은 평생을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산 사람이다. 아내도 외면하고 자식도 몰라라 했다. 가정에서는 무능하고 밖에서는 유능했다. 삶의 동반자로 울타리가 되어 주지 않는 남편을 바라보고 사는 일이란 얼마나 극심한 고통인가. 자식을 끌어안고 내공의 힘을 키우며 견디고 산 친구는 늘 웃으며 오늘보다 나은 날을 기다렸다. 그런데 젊은 날부터 아내에게 경제적인 면도, 다정한 손길 한 번 주지 않던 남편이 갑자기 쓰러졌다.

친정아버지와 시아버지가 친분이 있는 사이라고 자식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혼인을 시켰다. 여자 처지에선 순응할 수밖에 없었지만 혈기왕성한 남자는 받아드리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결혼은 했어도 배우자에게 마음을 열지 않으니 갈등만 깊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찌 보면 고인의 삶도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을지도 모른다.

밖으로만 돌던 남편이 쓰러졌을 때, 그녀도 많은 갈등을 겪었다. 평생 속을 끓이며 살았는데 끝까지 이러나 싶어 분하고 억울한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다 치매가 오면서 어린애가 되어버리자 측은지심이 생기더란다. 너도 불쌍하고 나도 불쌍하더란다. 지난 일은 묻어두고 금실 좋은 부부처럼 지극정성으로 병구완하는 그녀를 보고 말문이 닫혔던 것은 나뿐이 아니었다. 아내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물 한잔도 마시기 어려운 처지면서도 고생하는 아내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던 사람이었다. 치매가 오자 밖에서 맺었던 인연들을 잊은 채 아내만 찾는 것도 못마땅했다. 병들어서야 온전히 아내에게 돌아와 용서도 구하지 않고 그녀의 차지가 되었다.

부부가 일심동체라는 말은 환상이다. 완벽한 둘이다. 자라온 환경의 차이로 남자와 여자는 각자 다른 세계에 살다 보니 서로 몰라도 너무 모른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도 일상처럼 싸우고 소 닭 보듯이 사는 부부가 얼마나 많은가. 예외는 있겠지만 등 떠밀려 결혼한 사람들은 정서적으로 가까워지기가 더욱 어렵다.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시월에 여행 가자. 가서 무작정 걷기만 하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하는 친구 뒤에서 문상객들이 주고받는 말이 서늘하다. “명은 좀 짧아도 복 많은 사람여. 어디서 저런 마누라를 만났는지 모르것어. 어지간히 고생을 시켰어야지. 그런데도 몇 년을 지극정성으로 수발을 들었잖여. 장가는 참 잘 들었지!” 친구가 눈물을 떨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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