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숫집의 서러움
국숫집의 서러움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1.09.14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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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가끔씩 찾던 국숫집에 오랜만에 들렀다. 번화가에서 조금 동떨어진 곳임에도 잘 우려낸 멸치 육수로 꽤 많은 식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던 곳인데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아쉬웠던 곳이다. 우연히 전에 있던 장소보다 훨씬 유동인구가 많은 번화가로 자리를 옮겨 영업하고 있는 것을 찾아냈고, 여러 날을 벼르던 끝에 아내와 장모님을 모시고 그 국숫집을 찾았다.

주차를 하느라 시간을 지체한 뒤 뒤따라 국숫집에 들어섰는데, 그때까지 아내는 주문을 못 하고 `기계'앞에서 쩔쩔매고 있다.

`고향의 맛'이라든가, 아니면 `어머니', `할머니', `외할머니'까지 소환하며 `추억'으로 음미하던 잔치국숫집은 이사를 하면서 더 세련되게 실내장식을 하였으되 주문방식이 기계적으로 바뀌었다. 키오스크로 불리는 디지털 화면을 통해 먹고 싶은 국수를 터치해 주문하고, 사람을 통하지 않고 `기계'에 직접 결재를 하는 `비대면'이 필수 절차가 된 것이다.

나는 일부러 아내를 도와주지 않았고, 차례를 기다리는 다음 손님의 눈치에 서두르던 아내는 느린 속도로 끝내 주문에 성공하기는 했으나, 당황한 탓인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식탁에 앉았다.

국수를 먹기 위한 준비 과정은 그러나 지금까지의 순서와 다른 또 하나의 복병이 있다. 국숫집 벽면에 `셀프'라고 커다랗게 쓴 종이를 붙여 놓고 김치와 단무지, 단 두 가지에 불과한 반찬도 손님이 직접 가져와야 하는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국수의 맛은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아 평소 입이 짧으신 장모님께서도 맛있는 식사를 하셨으나, “나 혼자 친구들끼리 오면 주문도 못 해 식사는 엄두도 못내겠다”는 한탄이 가볍지 않다. 국숫집을 둘러보니 예전과는 달리 후루룩~하는 면치기 소리만 간간이 들릴 뿐 식당이 유난히 조용하다. 주문을 받아 주방을 향해 외치던 목소리는 사라졌고, `띵똥~'하는 차임벨소리만 기계적으로 반복된다. 당연히 손님들 사이로 바쁘게 오가던 종업원의 흔적도 사라지고 말았으니, 어쩐지 평소 좋아하던 국수의 맛도 기계적이고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건 과민한 탓이겠다.

며칠 전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음식 주문을 위한 키오스크 때문에 사라진 계산대 청년 여성의 자리가 애잔했는데, 이제 우리 동네에도 `기계'가 사람을 밀어내는 현실을 거부할 수 없는 세상이 되고 있다.

국숫집에서, 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사람들에게 시달리며 음식 주문을 받고, 식탁 사이를 분주히 오가던 노동자는 대부분 여성이다. 그들의 일터는 어쩌면 스스로의 생명이며, 처지에 따라서는 부양해야 할 식솔들이 간신히 매달리는 생계의 전부였을 수도 있다.

사람을 밀어내고 거만하게 자리를 버티고 있는 `기계'는 식객들의 수고로움과 인건비의 잉여를 누구의 몫으로 돌아가게 하는가.

코로나19로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는 자영업자들의 `사람'대신 `기계'로 `전환'할 수밖에 없는 고육지책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음식을)섭취하는, 그것도 기왕이면 더 좋고 맘에 드는 식사를 통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결국 기계치인 고령자들도 `기계'에 순종하며 익숙해질 것이고, 코로나19의 위기가 사라진다 해도 다시 `사람'을 부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람'을 대신하는 `기계'의 공격은 사람들이 부지불식간에 손끝으로 그리고 온몸으로 차곡차곡 제공하는 정보, 즉 데이터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2015년 45개 계열사에 불과했던 카카오그룹이 불과 6년 만인 올 상반기 기준 118개로 늘어나는 탐욕이 가능했던 것은 개별 자연인들이 무의식적으로 제공했던 정보와 그 정보를 바탕으로 하는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하면서 무궁무진한 데이터를 제공하는 현대의 자연인들은 그 수고로움의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국숫집에 단순하고 내부적으로 제한된 데이터이거나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거대 공룡의 플랫폼 대기업일지라도 그 침범의 과정은 다르지 않다.

다시 사람이 그리운 추석이 다가오고, 우리는 또 그리움을 참아야 한다. 그러나 식당에서 사라진 상냥한 `사람'들은 기다려도 돌아오지 못할 것이니, 공연히 국숫집만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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