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을 담이게, 문을 문이게 하는 담과 문 이야기
담을 담이게, 문을 문이게 하는 담과 문 이야기
  •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 승인 2021.09.09 2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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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림에 담긴 우리 이야기
그림책 그림ㅇ
그림책 그림ㅇ

 

얼마간 나의 가슴은 무언가가 꽉 차 있는 듯 묵직했었다. 되묻고 되물어도 연유를 찾기가 힘들었다. 때마침 찾아온 가을장마! 앞산 숲의 나무들에 부딪는 비의 소리와 사정없이 내리긋는 비의 모습은 나에게 시간을 줬다. 차분히 나에게 질문하고, 나의 소리를 듣는 시간을 줬다. `멍'의 시간이 `앎'의 순간이 된 것이다. 이는 벽을 마주하던 책상을 `산멍' 할 수 있는 창문 앞으로 위치를 바꾼 뒤 생긴, 나의 공간이 준 덕이다.

자연을 바라보고 오가는 사람들을 관조할 수 있는 창문 앞에 앉으면 자연스레 마음 명상하는 시간이 된다. 고개 들어 하늘 한참 바라보고 차 한 잔 마시고, 지나는 사람 내려다보고 차 한 잔 마시고, 병아리도 아닌데, 마음 차분해지는 감정을 먹느라 눈은 바쁘다. 안온함이 있는 공간 안에 있다는 안도감도 한몫했을 것이다.

안과 밖! 이를 구분 짓는 것에는 벽과 담이 있다. 담은 안과 밖으로 공간을 나누어 준다. 그리고 담에는 그 두 세계를 이어주고, 그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장치가 있으니 바로 문이다. 간결한 글과 담백한 그림으로 담과 문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림책이 있다. 그림책 <담/지경애 글·그림/반달>이 그렇다.

그림책의 독자를 아이들로 한정 짓는다면 이 책은 분명 적절치 않은 소재와 그림의 책이다. 허나 그림책이 0세부터 100세까지라 할 정도로 독자층의 폭이 넓은 측면으로 보면 문학의 특성과 기능을 너끈히 해낼 수 있는 작품이다.

대다수의 주거시설이 아파트인 요즘과 달리 1960~70년대는 담과 담이 잇대어 있는 주택이 많았다. 담은 골목을 만들고 그 길은 아이들의 놀이터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그림책 <담>은 그 시절 이야기이다. 그러니 담에 대한 추억이 있는 독자에게는 훌륭한 문학 매개체가 될 것이다.

이 책은 담 밖과 담 안의 이야기로 나눌 수 있다. `담은, 내 손을 꼭 잡아 주는 친구, 쓱쓱쓱 한바탕 장난 글씨, 우리 엄마 기다리는 등대, 아 쌀 씻는 소리, 엄마다!' 담벼락 밑에서 엄마를 기다리던 소녀는 엄마를 생각하게 하는 표징 중의 하나인 쌀 씻는 소리를 듣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소녀는 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대문 앞에서 잠시 머무른다. 지치고 불안한 마음을 내려놓게 되는,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조금씩 허물게 하는 대문을 마주하며 잠시 머문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간다. 마당을 안고, 가족들의 신발을 안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우리 모두를 안아주는 담 안으로 들어간다.

담은 안에 있는 이들에게 편안함과 안정감을 준다. 동시에 밖으로 향할 수 있는 틈인 문도 내어 준다. 요즘 아파트는 벽과 창문이 그 역할을 한다. 담에 대한 추억이 없는 아이들은 심미적 요소인 그림을 보며 담을 알면 된다. 직선으로 이루어진 담 밖의 그림에서는 활력을, 곡선이 많은 집 안의 풍경에서는 따듯함과 안온함을 느끼며 책을 즐기면 된다. 삭막한 세상, 감성이 부족한 세상이라며 탓하지 말고, 문학과 예술이 함께 공존하는 그림책이라는 담 안에서 아이들과 재미지게 놀며 마음에 감성을 키워나가 보자! 그러면 그림책은 문학으로서의 역할을 다 하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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