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아침
  • 정인영 사진가
  • 승인 2021.09.09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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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날이 밝아올 무렵 집 근처 앞산에 간다. 야트막한 산 숲 사이사이 서린 맑은 공기를 마시며 걷는 기분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 산새 우는소리에 몸과 마음이 나무와 나뭇잎이 되어버리듯 잔잔한 바람이 내 마음 안으로 젖어든다.

30여 분 오솔길이 끝나면 산 위에 자리한 배드민턴장에서 또 다른 운동을 시작한다. 온몸을 좌우로 돌리면서 스트레칭을 하노라면 몸이 한결 가벼워진다. 허리를 구부리고 좌우 옆구리와 위로 두 팔을 뻗어 올리고, 가슴을 활짝 열어젖히다 보면 힘이 솟는다.

목의 근육을 풀어주고 머리를 앞으로 숙였다가 세우고, 엉덩이를 약간 뒤로 빼고 두 팔을 앞으로 힘차게 뻗은 상태에서 해가 떠오르는 곳을 바라본다. 밤사이 느슨해져 있는 잇몸도 부딪혀보고, 배를 가볍게 두드려 장기가 깨어나게 한다. 그리고 두 팔을 번쩍 들어 만세를 부르는 것으로 아침운동을 마무리한다.

이때쯤이면 산은 훤해진다. 몇몇 사람들과 차 한잔 나누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일도 즐겁다. 사람들 저마다 가슴에 사연 하나씩 품고 산에서 내려간다.

이렇게 앞산은 나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다. 매일 앞산에 가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전날 술을 좀 많이 마셔서 몸이 힘들어졌을 때와 아침에 비가 내리는 날이 그렇다. 가끔 꾀가 나면 동네 한 바퀴 도는 것으로 대신하지만 앞산과는 비교되지 않는다.

술에 취해 집에 돌아온 이튿날 아침에는 앞산에 못 갈 것을 알면서도 워낙 술을 좋아하여 어쩔 도리가 없기도 하다. 술병은 오전 내내 힘이 들어 꼼짝 않고 있지만, 오후 해 질 녘이면 회복이 되는데 한편으로 후회되기도 한다.

동네 한 바퀴는 고요한 새벽시장과 마을 곳곳의 한적함에서 색다른 맛을 느끼면서 걷는 재미도 있다. 아침 일찍 일터로 출근하는 사람, 아직 닫혀 있는 상점들, 조는 가로등에 길고양이와 개들의 삶의 언저리를 가늠해 볼 수 있어서다.

비가 내리는 아침에는 신문과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낸다. 신문으로 세상 돌아감을 알게 되기도 하고, 맑은 정신으로 읽는 책은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아 잊히지 않는 유익함 또한 덤이다.

나지막하게 들리는 빗소리에 더불어 음악을 듣는 멋은 듬직한 보너스. 비를 주제로 한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소리가 차분하게 마음 가다듬기에 제격이다.

서쪽 하늘에 노을이 지면 어둠이 밀려와 컴컴한 밤이 되는 것을 아는 것처럼, 살아오면서 겪은 많고 많은 일에서 조금은 덜 당황하고 조금은 덜 태연해질 수 있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나에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앞산에서, 동네 한 바퀴에서 깨닫는다.

잘 되는 하루는 아침에 결정된다는 말을 믿어서일까? 나에게 있어 아침은 대단히 중요하다. 어린 시절부터 길게 이어져 온 운동부족으로 허약했기에 앞산과 동네 한 바퀴에서의 아침이 안겨준 건강과 여유로움이 꽤 보배롭기만 하다. 힘들고 아픈 저녁이 없어야 하지만 포근한 아침은 더 할 수 없는 삶의 이정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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