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공부의 기회
선거, 공부의 기회
  •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 승인 2021.09.08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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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더불어민주당의 첫 대선 경선이 충청지역에서 치러졌다. 결과야 어찌 되었건 대선버스가 출발했고 국가의 중요한 리더를 뽑는 일은 시작된 셈이다.

선거라는 말을 들으면 아픈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국회의원 선거나 총장 선거 등 교수들이 다수 출마하는 선거인가 싶겠지만 아쉽게도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치렀던 반장 선거다. 작은아이는 어디 대표로 누가 떼밀기라도 할까 봐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는 아이였는데, 큰아이는 달랐다. 리더가 되고 싶어했다. 문제는 리더가 되고 싶은 것과 선거 결과는 다르다는 데 있었다.

그 문제는 결국 3학년 1학기 반장 선거에서 터지고 말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4번의 선거를 치른 베테랑이 된 아이는 3학년 1학기에는 꼭 반장이 되리라 마음을 굳게 먹은 모양이었다. 어느 날 보니 아이 책상 위의 할머니 심부름이며 집안일을 거들고 받은 천 원짜리 지폐를 담은 상자가 비어 있는 게 아닌가? 함께 등교하며 물었더니 자기를 뽑아준다고 약속한 아이들에게 맛있는 거 사먹으라고 천원씩 나눠줬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밝은 목소리로 말이다.

아이를 우선 등교하도록 한 후 교문 근처에 주차를 하고 한참을 고민했다. 담임 선생님께 말할까? 아니야, 어린 시절에 그 정도 실수는 있을 수도 있지. 천원씩 받았다고 다 우리 아이를 뽑겠어? 반장이 되든 떨어지든 반장선거를 마친 후 아이를 잘 타이르면 되겠지.

하지만 교육을 전공하고 그것도 박사학위 논문도 쓰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건 안 되겠다 싶어서 결국 담임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잠깐 뵙자고 청한 후 그간의 사정을 소상히 말씀드리고 아이가 아직 자라는 중이며 우리 아이뿐 아니라 학급의 모든 아이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잘 타일러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렸다. 어쩌면 선거교육으로 좋은 소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하면서 말이다.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출근했다가 퇴근해보니 잔뜩 풀이 죽은 채 아이는 웅크리고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벼락같이 화를 내셨고 우리 아이를 일으켜 세우고 선거에 돈을 개입시켰으므로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없음을 말씀하신 후 우리 아이에게 돈을 받은 사람도 모두 일으켜 혼을 내시면서 내일까지 모두 돌려주라 하셨다는 것이다.

말문이 막혔다. 아이의 행동은 분명 잘못되었다. 하지만 엄마가 선생님께 아이의 잘못을 어렵게 말씀드린 것은 이번 일이 교육적으로 처리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선생님과 엄마의 교육적 처리는 꽤나 의견차가 있었다. 그 다음 날부터 며칠 동안 아이는 담임 선생님이 회수해주신 불법 선거 자금을 들고 귀가했다. 재잘거리던 아이는 입을 다물었고, 다시 돈을 담은 상자를 아이는 다시 열지 않았다.

아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선생님께 부정선거를 고발한 것이 엄마임을 고백하고 당시 힘들었을 아이에게 미안했다고 늦은 사과를 했다. 아이는 기억도 안 난다며 엄만 교육자인데 당연히 그리했어야지 하며 웃었다. 마음이 놓였다. 상처받은 사람 없게 모두 해피엔딩으로 아름답게 처리되었더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삶이 어디 그런가? 어긋나고 빗나가는 것이 일쑤지.

그럼에도 선거에 바람이 있다면 당연히 그리했어야 하는 일이 이번 선거를 통해서도 증명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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