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생의 도구
공생의 도구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1.09.07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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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권능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은 `불'과 `도구'의 사용이다.

태초부터 인간은 몸집이 그다지 크지 않고, 든든하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두터운 피부와 털도 없는 나약한 존재였다. 게다가 다른 종을 공격할 수 있는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도 없으며, 몸놀림도 형편없이 느려 맨몸이라면 멸종됐을 신체조건을 지니고 있다.

인간은 그런 약점을 다른 생명체에겐 위험하기 그지없는 불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능력을 습득함으로써 극복하였으며, 빈약한 손에 도구를 챙겨들면서 공격과 수비에 유리한 강점을 갖추게 된다.

오늘 `2021 청주공예비엔날레'가 개막된다.

코로나19 변이바이러스가 일상을 위협하는 비상의 상황에서도 중단 없이 열리는 청주공예비엔날레는 문화도시 청주의 위상을 대표하는 글로벌 문화예술축제를 상징하는 흔들림 없는 의지와 다름없다.

올해 청주공예비엔날레의 주제는 `공생의 도구'로 정해졌다.

나는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표현을 그리 흔쾌하게 여기지는 않는다. 지나치게 권위적이고 지배적이며, 나머지 모든 생명들과의 공존의 가치를 위협하는 오만의 단초가 `만물의 영장'에서 비롯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인간으로 가능하게 하는 생존의 수단으로써 `도구'에 대해 충실하게 그 의미와 가치를 천착(穿鑿)해야 하는 것은 공예비엔날레가 지니고 있는 숙명의 참뜻과 속뜻이다.

하이데거는 `도구'를 통해 인간이 비로소 살아서 활동하는 세계와 만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존재와 시간>을 통해 하이데거는 `도구'와 인간의 관계를 통찰하면서, 분리되거나 고립된 것으로 보지 않는 인간과 외부세계와의 관계를 직시한다. “대지에 (이러한) 도구가 귀속돼 있다”는 전제에는 인간이 인간을 둘러싼 환경과 조우하는 순간, 객관적 사물의 세계에서 `생활세계'로 전환하는 매개자로서의 `도구'를 설명한다. `도구'를 통해 사물의 세계에 불과한 객관의 세계를 인간에 의해 구성되는 `생활세계'로 탈바꿈하는 것은 코로나19의 환난에서 그래도 놓칠 수 없는 생명의 존재가치에 대한 소망과 맞닿아 있다.

존재와 존재자, `손 안에 있는 것(Zuhanden)'과 `눈앞에 있는 것(Vorhandenheit)'의 하이데거식 구별은 이론적인 인식을 통한 사물과, 제작된 `도구'로서 확보되는 역동과 생동의 예술적 가치를 지닌 `생활세계'로 환기될 수 있으며, 이는 곧 청주공예비엔날레로 통한다.

`공생'이라는 것은 함께 살아감을 의미한다.

우리는 `만물의 영장'의 지위에 만끽하여 인간을 둘러싼 환경을 함부로 대한 탓에 인류를 위협하는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그 진화된 변이에 시달리고 있다. 이를 극복하는 길은 일차적으로 일정부분 거리를 두는 `사회적 관계'의 유지에 있다.

그리고 그 환난의 위기를 떨쳐버리고 완전한 일상으로 환원하는 일은 백신이라는 `도구'로 희망되는 역동과 생동적 관계 설정에 있다. 그러므로 코로나19의 시대에 `공생의 도구'를 추구하는 청주공예비엔날레의 철학적 성찰의 의미와 가치는, 관계를 통한 일상성의 회복이라는 위기 극복의 목표와 서로 멀리 있지 않다.

현대 미술은 순수미술을 Fine Art, 공예를 비롯한 응용미술의 세계를 두루 아우르며 Applied Art(응용미술)로 구별해 통칭한다. 청주가 왜 공예인가라는 해묵은 시시비비가 여전히 말끔하지는 않으나, 공예가 실제적인 효용에 목적을 둔 패션 디자인 등의 장식의 영역으로 확대되며 예술의 연장선으로 보는 시각이 대세인 것은 분명하다.

질병과 그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으로 `생명'의 위험을 호소하는 팬데믹의 세상에 예술(공예비엔날레)의 필요성에 대한 의심은 의미가 없다.

우리가 `도구'로서 한계를 극복하며 `인간'의 지위를 확보했듯이 철학적 사유와 예술을 향한 집념을 통해 무한한 창조의 세계를 함께 살아가는 `공생'의 관계는 `지금 여기'에서 더욱 필연이다. 힘겹게 문을 여는 만큼 `도구'의 희망을 결코 손에서 놓지 않는 인간의 가능성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2021 청주공예비엔날레로 기억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향연이 예술적 가치를 통해 팬덱믹 극복의 희망으로 남는 성찰의 시간으로 넉넉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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