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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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인영 사진가
  • 승인 2021.09.02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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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인영 사진가
정인영 사진가

 

귀신이라 하면 떠오르는 말이 `몽달귀신', `달걀귀신', `처녀귀신'이다. 이야기는 무서우면서도 재미있어 귀를 쫑긋 세운 채 밤을 지새웠다. 그렇게 어른들에게 듣는 것만으로 무서움과 호기심을 주었던 이야기가 나에게 실제 귀신이 나타났다.

찌는 듯한 팔월 하순, 동네 사랑방에 모여 있던 친구들과 다릿목 건너 큰 과수원으로 사과를 먹으러 갔다. 홍옥 사과가 빨갛게 익어 보기도 좋고, 시큼한듯하면서도 입안 가득 퍼지는 단맛이 참 좋았다. 배부르게 사과를 먹고 마을로 돌아오기 위해 과수원을 나와 신작로를 걸어오는데 일행 중 하나가 “저게 뭐지?” 하고 과수원 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곳에는 원래 묘지였었는데, 묘지 앞에 흰옷을 입은 사람이 서 있었다. 갑자기 머리칼이 쭈뼛 서고 숨이 멎었다. 누군가 “이럴 땐 노래를 하면 괜찮아”라는 말에 모두 노래를 부르면서 다리 쪽으로 걸었다.

다리 중간쯤에 다다르니 물 흐르는 소리만 들릴 뿐, 컴컴한 밤은 무서움을 더 했다. 그렇게 다릿목을 지나 마을로 걷는데 “야, 저기 좀 봐”하고 누군가 또 소리쳤다. 묘지 앞에 있던 흰옷 입은 사람이 길 한가운데 서 있었다.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랑방을 향해 내달렸다. 평소에는 모두 집으로 돌아가 잠을 잤지만 그날은 모두 아무 말도 않고 사랑방에서 밤을 보냈다.

이튿날 아침 과수원을 관리하는 사람을 만나 어젯밤에 있었던 흰옷 입은 무언가를 보았다고 말했다.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표정으로 “다릿목에 귀신 있어”라며 이야기를 들려줬다.

여름 장마가 한창이던 날 밤, 그가 집을 나서 다릿목을 지나고 과수원에 도착했다.

천둥 번개가 요란하고 비는 왜 그리도 쏟아지는지, 방에서 잠을 잘 엄두가 나지 않더란다. 안 되겠다 싶어 집으로 가기 위해 다릿목을 향하고 있는데 그 빗속에 우산도 쓰지 않은 여자가 앞에 가는 것이 아닌가. 그는 다릿목에 귀신이 있다더니 저게 `귀신인가보다. 내 오늘 잡아 보아야겠다'라는 생각에 걸음을 재촉해 여자를 붙잡으려 했다. 그 순간 다릿목을 지난 그 여자가 다릿목 아래로 내려서더니 쏜살같이 늪 쪽으로 내달려 눈 깜짝할 사이 사라졌다.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귀신인지 뭔지, 아무리 젊은 혈기와 담력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더는 용기를 내지 못했다고 했다. 그날 이후 비가 많이 내리는 날 밤에는 과수원에 가지 않았다는 그는 이후 몇 번 더 봤다며 귀신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친구들과 과수원으로 사과 먹으러 가던 버릇이 없어진 것도 귀신을 본 이후다. 누가 먼저 말하지 않았지만 한 번도 가지 않았다. 그때 과수원은 규모가 상당해졌고, 그는 그곳에 큰 집을 짓고 아들 딸과 단란하게 산다.

밤늦게까지 마을에서 주민들과 시간을 보내다가 과수원으로 가는 그는 장난기가 발동할 때면 다릿목에 이르러 늑대 울음소리를 하는데 이 소리를 들은 이웃 동네 사람이 `걸음아 나 살려라'하고 달아나는 일도 있었다. 그 다음 날 마을에는 다릿목에서 늑대가 울면서 가는 걸 봤다는 이야기가 소문이 퍼진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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