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통문의 날, 다시 생각하는 양성평등
여권 통문의 날, 다시 생각하는 양성평등
  • 오신정란 충북여성연대 공동대표
  • 승인 2021.09.01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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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오신정란 충북여성연대 공동대표
오신정란 충북여성연대 공동대표

 

양성평등은 그 언어 자체로 배타적이다. 사람의 성을, 양성, 곧 두 개의 성으로만 묶고, 그 외의 성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라 한다.

두 개의 성만을 인정하며 마치 남성의 반대편에 여성을 세우고 대등한 것처럼, 한 쌍으로 세팅한다. 양성평등이란 논조에 담긴 반인권적 감수성을 숨긴 채 말이다.

정희진은 `양성평등에 반대한다'에서 여성주의=양성평등이라는 오해에 대해 서술한다. 남녀가 모든 면에서 대등하기 때문에 남성혐오와 여성혐오를 대립적 논리로 오독한다는 것이다. 이미 양성평등은 실현되었다고 보이게끔 하여, 사회 곳곳에서 여성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심지어는 특정 직군에서는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아, 역차별을 당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성비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오히려 남성에게 가산점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여성이 이미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아우성친다.

그러나 통계청과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통계로 보는 현실은 다르다. 여성의 삶은 여전히 열악하다. 여성가족부는 1997년 이후 매년 양성평등 주간마다 여성의 모습을 부문별로 조명하는 해당 통계를 제공해오고 있다. 검색으로 참고하시길 바라며.

세상의 언어는 남성들의 언어들로 채워졌다. 법과 제도, 그리고 지위와 지식의 독점, 존재하는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의 성에 기반해 온 역사이기에 여성은 남성의 언어를 빌려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성평등 언어는 다르게 연상되거나 조롱거리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성평등 강의 현장에서는 강사가 설명하는 성평등 개념에서부터 거부감을 드러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좋은 게 좋은 거다', `친절하고 다정해야 여자지', `성욕은 남성의 본성인데', `애 다 키워놓고 나가서 일해라'는 등, 귀를 씻고 싶은 이야기들이 이집저집의 담을 넘는다.

`모든 걸 잘해야 하는 여자와 한 가지만 잘해도 되는 남자의 탄생'은 일하는 여성은 멀티가 되어야 하며 거기다가 슈퍼우먼이 되지 않고서는 일할 생각을 하지 말라 한다. 최근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인턴제로 직장을 구해서 일하기 시작한 삼십대 여성은 출산 전까지 전문직종에서 일했다고 한다. 그러나 5년을 지나 다시 직업을 구하려 보니 퇴사한 직장에는 다시 돌아갈 수 없었고, 자신이 정말 그 전문직 군에서 일을 했는가 할 정도로 까마득했다고 한다. 남편이 아이를 돌보고 가사노동을 도와주기로 해서 다시 인턴으로나마 일을 시작할 수 있어 다행이라며 웃는 그녀의 미소가 짠했다.

일·가정양립은 왜 여자들의 고민으로 전락하는가? 왜 일·가정양립은 남자의 문제가 아닌 일하는 여성들의 몫으로 떨어지는가? 일·가정 양립은 여자들의 문제가 아닌 인류의 문제, 곧 보편의 문제이다. 여자든 남자든 태어날 때부터 성차별주의적 사고와 행동양식을 받아들이게끔 사회화되었다. 그러니 여자도 남자만큼이나 성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다.

이토록 반인권적 성차별적 사회가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이유는 성별 양극화, 남성중심주의가 뿌리 깊게 연동하여 작동하기 때문이다. 남성의 우월함과 남자다움으로 남성이 세상의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고, 남성성과 여성성으로 성역할이 구별된 채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문화적 관념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여자든 남자든 가부장적 통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란 어렵다.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며 동안 누려온 이득(성별기득권)을 내려놓을 때 차별 없는 사회로 한발 다가설 것이다.

9월 1일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인권선언이 이루어진 날이다. 122년 전 그날, 여성도 배울 권리, 직업을 가질 권리, 정치에 참여할 권리를 주장했다. 이 선언문은 여전히 모두에게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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