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다시 9월
우리에게, 다시 9월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1.08.31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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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현실은 우리가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가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가 믿는 것이다.

우리가 믿는 것은 우리가 인식하는 것이 바탕이다.

우리가 인식하는 것은 우리가 찾으려 하는 것이다.

우리가 찾으려 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바탕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인식하는 것이 바탕이다.

우리가 인식하는 것은 우리가 믿는 것을 결정한다.

우리가 믿는 것은 우리가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을 결정한다.

우리가 사실이라 믿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인지 물리학자 데이비드 봄(David Bobm)의 문장을 여러 번 거듭 읽으며 9월을 맞이한다. 아인슈타인과 양자역학을 함께 연구하기도 한 업적을 남긴 그의 현실 인식은 결국 윤회. 처음과 끝이 커다란 동심원을 따라 회전하며 맞닿는 것이라는 물리학의 근본과 깊은 철학적 성찰이 있다.

현실과 사실, 믿음과 인식, 그리고 그 인식의 바탕이 되어야 할 (인간의)생각이라는 것이며, 그런 사유의 흐름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것이 현실이라는 깨달음으로 9월을 맞는다.

9월이 되고, 또 그렇게 달력의 숫자가 바뀌는 순간을 겪으며 우리는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게 된다.

가을이 오고 있다는 조짐과 징후는 여러 가지로 나타나지만, 그중 나는 시냇물이 흐르는 모습에서 발견하는 경우가 가장 뚜렷하다.

한여름 꺼내 입었던 반바지와 짧은 소매의 옷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서늘함이 새벽녘 처음으로 실감하는 계절의 흐름이겠다. 그다음으로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부터 발악하던 매미울음 소리를 밀어내고 옥타브를 한층 낮춘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느낄 때 가을은 거부할 수 없는 행진으로 벌써 우리 곁에 있다.

그리고 어느 사이 시냇물이 흐르는 속도와 비례하는 물소리가 한여름의 푸짐함을 지우고 늦어지며 한층 고요해지는 변화를 느끼면서 좀 더 깊어지고 침착해지는 가을로 접어들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물이 흐르는 것은 섭리에서 벗어나는 일이 결코 없다. 언제 어디서든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며, 좁은 물길을 지나 갈수록 더 넓은 물길을 찾아가면서 마침내 더 넓어질 수 없는 바다에 이르게 된다. 더러는 그렇게 이치에 따라 흐르는 와중에 강렬한 태양빛에 녹아 순식간에 기체가 되어 승천하는 경우도 있으나, 세상을 두루 주유하는 과정이 생략될 뿐, 흩어졌던 물 분자들이 서로 뭉치면서 결국 지상으로 낙하하는 순환의 동심원에 있다. 처음과 끝이 늘 그렇듯이.

나는 물이 흐르는 소리를 통해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는 내 유난한 감각에 곧잘 희열을 느낀다. 겨우내 꽁꽁 얼었던 고체의 몸을 풀며 유난히 힘찬 박동을 하는 봄날의 두근거림. 그리고 넉넉한 수분으로 세상의 생명들에게 기운을 불어 넣는 초여름의 여유로운 강물, 혹은 벽력같은 홍수를 만나 포효하듯 흐르는 거친 물소리도 애틋하다.

그러다 가을이 되어 다시 속도를 늦추고 목소리도 크게 줄이며 한결 침착해지는 물의 섭리는 또 무슨 조화인가.

9월의 첫 아침. 마침내 9월은 우리 곁에 다가왔으나, 그 어김없음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무심한 질병의 세상은 우리에게 흐름을 실감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게다가 심술 맞은 가을장마가 예고된 가운데 시작되는 올 9월은 유난히 시큰둥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런 시들함은 결국 답답하고 지루하며, 질병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을 걱정하는 인간의 생각일 뿐.

9월에는 눈을 들어 키 큰 나무를 우러르거나 발밑에서 애처로운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또 차분해지는 바람을 느끼며 차분하게 생각이 깊어지는 계절로 삼을 일이다.

다시 되새기는 “현실은 우리가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이고 “사실을 우리가 믿는 것.” `믿는 것은 우리가 인식하는 것'이며 `우리가 찾으려 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고, 다시 우리는 `사실이라 믿는 것이 우리의 현실'로 윤회하는 것임을 깨닫는 시간. “기다리라 오래오래/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나태주 시인이 노래하는 <다시 9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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