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1.08.22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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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더불어민주당이 그제 문화체육관광위 전체회의에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을 처리했다. 전체회의라고는 하나 야당인 국민의힘이 보이콧함으로써 사실상 민주당 단독으로 밀어붙인 셈이 됐다. 이 법안의 핵심은 언론사의 허위·조작 보도에 중과실 책임을 물어 최대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리자는 데 있다. 고의와 악의로 사실을 조작 보도하는 행위를 엄벌하자는 취지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동안 여론을 호도하는 가짜뉴스의 폐해를 목도해온 국민들도 이 법안에 우호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안은 발의 초기부터 반대에 봉착해 논란을 빚어왔다. 국민의힘은 언론을 통제해 정권의 비리를 은폐하려는 ‘언론재갈법’이라며 철회를 촉구해 왔다. 국내외 언론사와 언론단체는 물론 정의당 등 진보정당과 변협 같은 진보적 단체들까지 반대 대열에 가세했다.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켜 국민의 알권리를 저해할 수 있다는 것이 반론의 핵심이다. 법안이 가짜뉴스를 규정하는 잣대로 내세운 허위와 고의, 반복, 보복성, 악의 등의 개념이 모호해 악용될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송열길 민주당 대표는 법안에 반대하는 국민의힘을 향해 “평생 야당만 할거냐”고 면박했다. 오해를 부를 발언이지만 함의하는 바도 적지않다. 당장 야당은 집권세력에 유리한 법안임을 여당 대표가 실토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쩌면 민주당이 “평생 여당만 할거냐”로 어의를 바꿔 돌려받아야 할 말이기도 하다. 자구가 모호해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부실한 법안은 언제 어떤 권력에 의해 언론을 규찰하는 수단으로 악용될지 모른다. 위험한 도구를 만들어 후대 정권에 넘긴 무책임한 정치를 했다는 비판을 받을 날이 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중처벌 논란도 제기된다. 허위보도를 처벌할 근거가 없어 민주당이 이 법안을 마련한 게 아니다. 현행 형법은 허위사실을 적시한 출판물로 명예훼손을 할 경우 7년 이하 징역, 10년 이하 자격정지, 1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도록 하고 있다. 현행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도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허위 사실을 드러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부작용이 우려되는 초강도 처방까지 동원해야 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해졌는지도 숙고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법안의 실효성이 의심스럽다는 지적도 있다. 부익부 빈익부 현상이 극심한 분야가 언론이다. 두고 볼 일이지만 재정이 두터운 메이저 언론이 이 법안에 주눅이 들 것 같지는 않다. 최저임금이 자영업자들에게 폭탄이 됐듯이 언론중재법이 수익이 취약한 중소언론만 위축시킬 공산이 높다. 가짜와 편파 뉴스의 산실로 지목돼온 유튜브 시사물들을 법 밖에 방치한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민주당은 25일 본회의를 열어 법안 처리를 강행할 태세다.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한다고 논란이 마무리될 것 같지도 않다. 이미 반대하는 쪽에서는 헌법소원 제기를 예고했다. 대선 판에서 벌어질 언론중재법 위헌논란이 여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속도 조절이 답이다. 민주당은 고위공직자와 대기업의 배상 청구권을 박탈하고 피해자의 입증 책임을 강화하는 등 이미 기존 법안의 문제점을 상당부분 개선했다. 반대자들을 설득할 토대를 구축한 만큼 좀 더 여유를 갖고 마침표를 준비하는 것이 유익해 보인다.

국회에 언론개혁을 다룰 특위를 만들고 언론·시민단체 등 이해 관계자들을 폭넓게 참여시켜 사회적 합의가 담긴 법안을 모색하길 권한다. 화급한 민생법도 아닌 사안을 국제단체와 우군의 반대까지 무릅쓰고 강행할 경우 대선을 앞두고 구차한 오해만 양산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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