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혜진
가수 이혜진
  • 정인영 사진가
  • 승인 2021.08.19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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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인영 사진가
정인영 사진가

 

“헤일 수 없는 수많은 날들을 살아오면서 힘들고 기뻤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감을 느끼면서 나는 언제쯤 노래다운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될지, 늘 아쉬워합니다.”

그 아쉬움이 곧 가수로서의 채찍질이 되어 지금까지 꿋꿋하게 살아왔음을 말하는 이혜진(본명 이복춘).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청소년기를 막 지난 이십세가 될 무렵부터 가수의 꿈을 키워왔다. 가수에는 문외한인 그였지만, 노래 잘 부르는 가수가 되겠다는 열정만은 남달랐다고 한다.

그러나 가요계에 아는 사람이라곤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없었기에 가수가 된다는 것에 회의감만 늘었다. 그러던 어느날 어렴풋이 아는 언니의 소개로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기회가 생겨 서울 영등포나이트클럽에서 7인조 보컬 싱어로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아 분열로 해체되고 말았다.

다시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야 했다. 스물한살의 그는 팝가수로서의 가능성을 종로프로덕션이 알아보았고, 무대에 설 수 있게 되었다. 그 무렵 한창 스타덤의 대열에 올라서 인기 가도를 달리고 있던 가수 조용필을 만나 `노래 잘 부른다'는 칭찬을 들었고, 댄스곡으로 인기도 생겼다.

그러나 늘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렵게 일하면서 조금의 여유가 생긴 어느날 급기야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밤무대를 전전하는 건달과 폭력배에게 시달리는 날이 늘더니 돈을 모두를 빼앗기고 폭력을 당했다. 살면서 가장 큰 어려움에 직면했다. 그로 인해 우울증과 정신이상으로 자살 충동을 일으키는 등 정신을 가다듬을 틈이 없을 정도로 황폐되어갔다.

가수로서 이름이 크게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밤무대에서는 나름대로의 노력과 열정으로 그의 이름이 차츰 알려지기 시작하여 일어서고 넘어짐의 고충을 이겨가던 그에게 힘든 일은 또 터졌다.

청주 쉐라톤나이트클럽 무대에서 식칼을 든 건달이 생명을 위협하면서 심한 행패를 부린 것이다. 밤무대의 험악한 세계에서 이골이 날 정도로 무디어져간 그는 이 사건 후로 수많은 협박과 회유는 물론 험악한 일을 당하고 또 보면서 그를 이겨내야겠다는 의지를 키워갔다.

이러한 가운데에서도 무대에서의 또다른 인기를 올리기 시작했는데 세계의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는 마돈나 춤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눈물과 한숨, 환희와 희망을 거울삼아 매일매일을 힘차게 견디어온 그가 서서히 멀어져간 불운을 잊어가는 것과 더불어 좋은 일이 연이어 다가서는가 했으니, 그것이 피부로 느낄 정도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성과에 힘입어 대중의 사랑을 받으면서 불꽃 같은 가수의 삶을 즐기는 단계에 올라섰다.

가수 나훈아가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그를 보면서 놀라는 표정을 보였으며, 이은하는 그의 팝가수다운 노래와 춤의 매혹적인 소질에 최고의 재능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가 하면, 20대 초반 산속으로 납치되는 등 많은 고난이 한순간에 날아가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36년여의 무명가수생활의 종지부를 찍은 그는 중견작곡가 황길성을 만나 `난계연가', `생거진천'을 연이어 발표하면서 팝발라드에 이은 세미트로트의 특성화된 음성과, 굵직함과 엷음의 중간적 허스키한 가수로서의 면모를 한껏 자랑하고 있다. 최윤성 작사작곡 `나의 사랑아'로 관심을 받기도 한 그의 앞날을 미루어 보건대 실로 의미 있는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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