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가 당번
오늘은 내가 당번
  • 장민정 시인
  • 승인 2021.08.18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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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장민정 시인
장민정 시인

 

몇 가지 음식 재료를 챙겨 넣은 가방을 짊어지고 아침 일찍 차에 오른다. 친정 부모님을 찾아뵙는 당번 날이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모두 바쁘다. 살다 보면 부모님을 찾아뵙는 일은 저만큼 뒤로 미뤄지기 일쑤, 우리 형제도 마찬가지다. 직업을 찾아 전국으로 흩어져 있어 한 번씩 고향에 가는 일은 연중행사가 된다. 무슨 무슨 가족 행사 날에만 모이게 되는 형제들, 그런 날이면 고향 집은 북새통을 이룬다.

형제·자매 모두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일은 모처럼 즐거운 일이지만 부모님들은 이 아들 저 딸 눈 마주칠 여가도 없이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게 되고, 종일 북적거리던 자식들은 또 썰물처럼 일시에 빠져나가니 부모님들 허전한 마음은 달랠 길이 없다. 그러니 항상 적적해하신다.

아들들은 자주 찾아뵙지 못함을 빌미 삼아 “우리 집으로 가시자”며 빈말을 하지만, 늙은 부모님들은 좀체 움직일 기미가 안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아들이나 딸과 살겠다고 도시로 나갔던 어른들이 토끼장에 갇힌 토끼들처럼 처량해 보인다나 어쩐다나. 다시 되돌아오는 경우도 많은 터라 높디높은 아파트의 한 공간인 아들의 집을 감옥에 비유하곤 하시며 평생을 살아온 시골집을 떠나지 않으려 하신다.

아들이 모시겠다 하면 도시는 싫다 하고, 딸들이 모시겠다 하면 아들들이 저렇게 많은데 왜 딸을 따라가느냐, 안 될 말이다 하신다. 양로원은 더욱 싫다시며 내 집, 내 고향밖에 모르는 어른들.

하지만, 세월의 변화는 어찌할 수 없는 것, 두 분의 거동이 불편해지고 병원 드나드는 횟수가 늘어나자 또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자식들이 모였다. 두 분만 고향에 계시게 할 수는 없다며 또 갑론을박하다가 거기서 도출해낸 것이 `당번제 찾아뵙기'다. 어찌 보면 마음에서 우러나온 자연 발생의 효도는 아닐지 모르지만, 의무가 앞서는 효도의 일종이라 해야겠다.

고향에서 살다 선산에 묻히겠다는 부모님 뜻을 어겨서까지 아들들이 모셔갈 수는 없는 일, 누구 한 자식이 일과 터전을 정리해서 내려가 모실 형편이 아닐 바에야 차선책을 선택해야지 어쩌겠는가. 도우미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고, 아주머니가 쉬는 토요일과 일요일은 아들딸이 당번제로 돌아가며 고향 집을 방문해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별미도 해드리고 등허리도 주물러 드리고…. 이 결정은 3년째인 지금까지 잘 운용되고 있다. 5남 3녀인 자식들은 2개월에 한 번, 당번 날을 어김없이 잘 지키고 있다.

형제가 많으니 이로운 면도 있다. 형제·자매들은 큰 형님이 1월 초에 만들어 우편으로 보내는 `우리 가족 고향 방문 당번표'에 따라 고향에 가는 날은 무슨 일이 있어도 어기지 않으려고 애쓴다. 당번 날은 자기 나름으로 부모님께 효도하는 날이다. 좋아하시는 음식이며 옷가지며, 무엇보다 말동무가 필요했던 부모님들의 곁에서 함께 지낸다는 것, 뿌듯해하는 부모님을 보면서 당번으로서 임무를 더욱 열심히 수행한다.

부모님은 토요일만 되면 번갈아 가며 달려오는 이 아들 저 딸 만나는 기쁨 때문인지 건강이 더 좋아지신 것 같고 밝은 모습이다. 토요일 아침이면 기다렸다는 듯이 당번 자식에게 “언제쯤 오느냐?” “조심해서 내려오너라”전화하는 일을 잊지 않으시는데 아버님은 올해 90세 생일에 기념 문집을 묶자고 하신다. 한동안 형제들 전화통이 불나게 생겼다.

형제들이 함께 모여 즐겁게 놀던 기회가 적어진 것이 옥에 티가 될 수 있지만 빈번한 전화와 카톡이 있어 그리 격조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하던가. 자식들 모두 함께 하는 당번제란 서로서로 짐을 나누어 드는 현대를 사는 효도법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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