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려진 풍경
삶이 그려진 풍경
  • 임현택 괴산문인협회 지부장
  • 승인 2021.08.17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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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괴산문인협회 지부장
임현택 괴산문인협회 지부장

 

여름 한복판에 선 팔월, 지구를 삼킨 역대급 폭염 기세가 대단하다. 따갑게 살 속을 파고드는 불볕은 세상을 녹여버릴 듯 기승을 부린다. 불덩이처럼 달궈진 지구는 날마다 홍역 중이다. 좀처럼 식지 않은 열기로 빌딩 숲 화초들은 제 몸을 가누지 못한 채 맥없이 늘어져 있다. 더위에 기운을 잃고 지친 사람들은 산과 계곡에서 자연과 더불어 힐링을 소망한다.

더운 어느 날 지인댁을 찾았다. 시골마을과 멀찌감치 떨어진 집들 사이, 낙향(落鄕)을 늘 그리워하다 귀촌 한 곳이다. 언제나 모자챙을 둥글게 구부려 쓰는 지인, 계절을 만끽하는 이곳은 휴양을 위해 따로 마련한 아담한 별장 같은 곳이다. 모자챙처럼 둥글둥글 낙천적인 성향에 까무잡잡하니 전원과 잘 어우러져 자연인으로 만끽하고 있다.

이렇게 만사를 내려놓고 자연을 품기까지 사연도 많다. 중년을 문턱에 두고부터 두통이 발병되었다. 용하다는 병, 의원을 문턱이 닳도록 다녔지만 호전되지 않았다. 두통으로 늘 미간을 찌푸려 골 깊은 주름이 파여 나이보다 더 들어 보였다. 습관적으로 인상을 써 날카롭게 변한 눈매로 사람들은 다가오기를 머뭇머뭇 주저한다. 그렇게 오랜 세월 두통 때문에 예사롭지 않은 인상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두통약을 달고 살다 보니 내성이 생겨 약발이 듣지 않아 고충스런 나날이었다.

고심 끝에 전원생활을 결심한 지인, 아내를 설득했지만 시골생활이 서툴고 막연하다며 이주를 수락하지 않았다. 그러고 몇 년이 흘렀다. 법정스님은 `사랑과 미움을 다 놓아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너무 좋아할 것도, 너무 싫어할 것도 없다. 너무 좋아해도 괴롭고, 너무 미워해도 괴롭다'말씀하셨다. 아내는 무거운 마음을 가슴에 담고 살다 보니 늘 편치 않았다. 스스로 무엇을 위해 사는가, 진정 행복이 무엇인가를 반복적으로 질의하고 답했으나 해답은 없었다. 두통약을 끌어안고 사는 남편을 애써 외면도 해보고, 여행으로 기분전환도 해봤지만, 부메랑처럼 원위치로 돌아온 현실, 제자리걸음이었다. 그렇게 버티고 버텼지만 아까시꽃이 흩날리는 봄날, 장년을 넘어서면서 어렵사리 이웃주민도 없는 시골마을로 이사했다.

이사 한 이듬해 봄날, 토종벌을 분양받았다. 서툰 솜씨로 부부는 송판을 사각으로 재단해 층층 쌓아 올려 벌통을 만들었다. 어설프지만 교본대로 밀랍도 발라 완성된 벌통을 산자락 군데군데 놓았다. 벌통 지붕도 예전 방식대로 지푸라기 대신 조리대를 이용해 고깔처럼 만들어 그럴싸하게 덮었다.

그렇게 귀한 토종꿀은 양봉과 달리 일 년에 딱 한 번만 수확을 한다. 봄, 여름, 가을, 꽃이 필 때 차곡차곡 쟁여놓은 꿀을 늦가을에 채취한다. 마치 나이 한 살을 더 먹으면서 나를 뒤 돌아보면서 결실을 거두듯이 말이다. 또한, 이듬해 농사를 위해 성숙된 종자를 보관하는 것처럼 벌통엔 토종벌이 월동할 수 있도록 약간의 꿀을 남겨준다. 과유불급이라 하지 않던가. 과하지 않게 꿀을 적당량만 수확해 인간도 벌들에게 혜택을 얻고, 벌도 충분히 먹으며 꽃이 피는 봄까지 잘 지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물질만능주의 시대 오늘만 살 것처럼 과욕으로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이들에게 일침을 가하는듯하다. 단순히 꿀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자연과 더불어 공존하며 자연생태계와 인류를 지키는 공익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가던 길 멈추고 자연을 본다. 내 품에 끌어안기보다 내 것을 내어주며 자연과 동행하는 부부, 아름다운 노을처럼 부부의 삶이 그려진 풍경이 세월을 덧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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