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엉이의 눈
부엉이의 눈
  • 박영자 수필가
  • 승인 2021.08.12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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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박영자 수필가
박영자 수필가

 

부엉이를 실컷 만나고 왔다.

부엉이의 초롱초롱한 눈과 눈싸움을 했다. 나는 부엉이 눈을 응시하고, 부엉이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나를 쏘아 보니 나는 슬그머니 눈길을 돌려 다른 부엉이에게로 옮겨 가곤 했지만 어느 부엉이도 만만치가 않았다. 더러는 윙크를 하느라고 한쪽 눈을 찡긋하는 부엉이도 있고, 아예 졸고 있는 부엉이도 있었지만 거의 모든 부엉이들의 눈빛은 초롱초롱 살아 있었기에 그 눈빛이 각인되어 자꾸만 눈에 밟힌다.

귀에서는 어릴 적 외갓집 뒷산에서 `부엉부엉' 울어대던 그 소리가 되살아나고, 초가삼간 외갓집의 정경이며, 같이 놀던 친구들의 모습들이 어제련 듯 한꺼번에 와르르 다가선다.

충북문화관 숲속갤러리에서 열리는 부엉이 작가 민병구 화백의 개인전을 보러 갔다. 인사동에서 전시를 마치고 이어서 청주에서 열린다기에 서울은 못 가도 여기는 꼭 가 보리라 마음먹었던 차에 의기투합하는 후배가 있어 더 의미가 있었다.

`만월', `축제', `달밤', `해질녘', `겨울밤' 같은 화제처럼 부엉이는 밤에 활동하다 보니 경계의 빛을 늦출 수가 없어 눈이 저리도 커졌나 싶고, 고독해 보이는 부엉이, 슬퍼 보이는 부엉이도 보였다. `축제', `워낭소리', `왕과 비', `독야청청' 같은 작품에는 행복해 보이는 표정, 고고해 보이는 표정, 장난기 서린 눈빛도 보인다. 여러 가지 기법으로 그린 갖가지 표정은 작가의 마음이 그대로 투영된 듯싶다.

민병구 작가와의 인연으로야 수십 년 세월이다. 조치원고를 졸업한 까까머리 시절 민 작가는 서운동에서 화실을 열고 계시던 보리작가 박영대 교수의 문하생으로 그 화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그림에 입문했었다. 나는 문인화를 배운답시고 퇴근 후에 그 화실을 드나들었다. 그러다보니 동생 같은 민 작가가 궁핍한 생활 속에서도 화가로서의 꿈을 키우며 역경을 이겨내던 그 의지를 보았고, 마음으로나마 그를 응원 했었다. 교수님이 서울로 떠나시고 사창동 시장 안에 조그만 화실을 차렸을 때 그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꿈을 접지 않았다. 그 후로 자주 만나진 못해도 그가 화가로, 무대 미술가로, 교수로, 시인으로 우뚝 선 오늘까지 그의 면면을 지켜보아 왔다. 무대미술가로도 독보적인 위치에서 예술문화대상을 네 번이나 수상했고 그 결과는 두터운 2권의 책으로 남았다.

언젠가 찻집에서 그의 손을 잡았을 때 나는 그의 고단한 인생을 짐작했고, 그러나 결연한 의지를 다시 보았으며 그것은 큰 충격이었다. 부엉이 작가가 된 계기도 운명적이다. 그의 작업실 환풍기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은 부엉이의 생태를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가. 부엉이는 예부터 지혜와 명예를 상징하며, 부(富)와 행복을 가져다주고 부부금실을 지켜준다고 했으니 의미 있고, 누구나 호감을 갖는 새이니 얼마나 탁월한 선택인가. 땀 흘려 노력하는 민 작가에게 신의 가호가 있었음이 아니겠는가.

민 작가는 `말로는 거짓말을 할 수 있어도 눈빛은 거짓말을 못한다'고 했다. 부엉이의 거짓 없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처럼 민 작가도 진실된 작가로 예술가로 거듭나서 승승장구하며 `부엉이 방귀에 아람이 벌어지고' 처럼 익살스럽고 재미있는 좋은 그림을 보여 주기를 두 손 모아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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