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읍성 발굴과 복원
청주읍성 발굴과 복원
  • 정춘택 충북도문화재硏 조사연구2팀장
  • 승인 2021.08.08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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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 사람들
정춘택 충북도문화재硏 조사연구2팀장
정춘택 충북도문화재硏 조사연구2팀장

 

지금의 청주 시내에는 청주읍성이 있었고, 지금도 청주읍성과 관련된 `성안동', `성안길', `북문로', `서문동'등 지명들이 남아 있다.

그리고 이 청주읍성은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관아와 민가들이 밀집되어 있었고, 청주의 정치·행정·군사적 중심지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청주읍성은 일제강점기 때 `시구개정'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명목하에 일제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훼철되어 버렸고, 지금은 땅속에 묻혀 있는 상태이다.

청주읍성은 북쪽의 지하상가가 있는 부분부터 남쪽의 청주약국이 있는 부분, 그리고 동쪽의 옛 청주백화점이 있는 부분부터 서쪽의 멀티플렉스 청주 서문점이 있는 부분 등 도로와 건물의 모습들을 통해 그 둘레는 약 1.74km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는 청주읍성 위에 건물 또는 도로 등이 들어서면서 성벽이 겉으로 드러나 있는 곳은 없기에 청주시에서는 땅속에 있는 청주읍성의 원형을 찾고자 2011년, 2012년에 청주읍성의 남서쪽 모퉁이 부분에 해당하는 중앙공원 일부와 도로 일부에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청주읍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의 땅속은 각종 전기배선, 상수도, 하수도, 통신선로, 가스선로 등이 있어 매우 복잡하였다. 여하튼 일련의 과정을 거친 후 도로의 아스팔트를 걷고, 그 위에 쌓여 있던 흙을 걷어보니 신기하게도 청주읍성의 성벽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큼직큼직한 돌들이 열을 이루며 쌓여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바로 땅속에 묻혀 있던 청주읍성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청주읍성의 기초부로 보이는 석렬과 기단석이 남동-북서 방향으로 약 23m가량 확인되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고려 말기 ~ 조선 전기 기와와 자기들 그리고 `성'자 명문이 새겨진 기와, `관' 자 명문이 새겨진 기와 등이 출토되었다.

이렇듯 2011년과 2012년에 이루어진 청주읍성 발굴조사는 그동안 말로만 전해지던 청주읍성의 실체를 처음으로 확인하였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청주시에서는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자료를 바탕으로 중앙공원 서쪽 도로변에 청주읍성 성벽의 일부를 복원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제강점기 때 청주읍성이 훼철되면서 청주 각지로 뿔뿔이 흩어진 청주읍성의 성돌에 대해 `청주읍성 성돌 모으기 운동'이 벌어지고, 발굴조사 과정에서 찾은 성돌들을 모아 복원된 청주읍성 성벽 사이사이에 쌓아 그 의미를 더하였다.

지금 청주읍성 복원구간의 성벽을 보면 모양이 반듯반듯하고 색이 옅은 돌들은 복원용 성돌이고, 그 사이사이 어딘가 모나있고, 색이 짙어 세월을 겪은 것으로 보이는 성돌은 `성돌 모으기 운동'에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아 주었던 뜻 깊은 성돌이다.

청주읍성이 위치하였던 곳을 발굴조사하여 그 실체를 확인하고, 이를 토대로 읍성의 복원이 이어졌다는 것은 지역문화를 바로 세우고 도시 정체성을 세우는 상징적인 일이라고 볼 수 있다.

향후 청주읍성에 대한 지속적인 조사와 복원이 이루어지고, 이를 통해 지역문화의 창조적 계승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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