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중에 하나만
그중에 하나만
  •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 승인 2021.08.08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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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녹아내리겠다. 요즘 아침마다 느끼는 날씨에 대한 감상이다. 원래 이렇게 더웠나, 아니 이렇게 따가웠나 싶게 탈진이 밀려온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산만한 자신 때문에 여름이 지독하게 다가옴을 성찰한다. 여기저기 쑥덕쑥덕 일을 만들고 있으니말이다. 시기심과 욕심이 부른 참사다. 다 잘하고 싶고 완벽하게 하고 싶어 몸살이 나는 성향 때문에 자신을 더욱 몰아치는 것 같다.

지인들에게 조언은 그럴듯하게 `너답게 살아라'든가, 이만큼 했으니 이제는 쉬어도 된다는가 하는, 스스로에겐 이도 안 들어가는 말로 일상에 지쳐 있는 이들을 위로하곤 했다. 어느새 나는 가식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또 하고 있다고 해도 나 자체보다 소중하진 않다. 내가 없으면 내가 좋아하는 일도 없으니까.

미국 작가 완다 가그의 `백만 마리 고양이'를 깊이 읽기하며 마음을 수습 중이다. 그녀는 칠남매 중 맏이로 태어나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병든 어머니와 동생들의 생계를 위해 죽을힘을 다해 살아야 했다. 물려받은 재능을 이용해 달력이나 카드 등 온갖 일러스트 일을 하며 집안을 일으켰다. 그녀의 좌우명은 `살기 위해 그리고 그리기 위해 산다'이다. 좋아하는 그림을 놓기는 싫고 그림을 그려 먹고살기는 호락호락하지 않았으니 모르긴 해도 죽기 살기로 그렸을 것이다. 동생들을 다 기르고 나서 그녀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만들어 낸 작품이 `백만 마리 고양이'다. 흑과 백으로만 표현된 굵고 거친 선은 그녀의 신념 같아 보인다.

대충의 시놉시스는 이렇다. 할머니의 외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고양이를 구하러 할아버지는 길을 떠난다. 그리고 수많은 고양이를 떨쳐 내지 못하고 전부 데려오는 데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가장 예쁜 고양이 한마리만 있으면 되었지만 너무 많고 예쁜 고양이가 따라오는 바람에 어떤 것도 선택하지 못한다. 수만마리의 고양이는 근처 연못을 마르게 하고 한입씩 뜯어 먹은 풀밭은 벌거숭이가 되고 만다. 생각 끝에 노부부는 같이 살 고양이를 알아서 결정하게 한다. 그러자 고양이들은 서로 자기가 제일 예쁘다며 싸움을 벌이고 결국 저희끼리 다 잡아먹어 버린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고양이가 있었으니 자신은 못생긴 새끼고양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소개한다.

할아버지 욕심에서 나를 보았다. 제대로 된 선택을 하지 못한 최후를 간접 경험했다. 그동안 나는 보이기 위해, 혹은 명성을 위해 자꾸만 자신을 일터로 내몰고 있던 것이다. 분명히 내 삶 어딘가에 도움이 될 거라는 막연한 희망 따위로 자위하며 한여름 휴가도 없이 지치도록 만들었다. 토너먼트 경기장의 운동선수처럼 가장 잘해야 하는 목표를 찍어 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사실, 지금 내가 하는 일들은 잘하는 일이고, 하고 싶은 일이라 지치거나 힘들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역시 쉼과 일에 균형이 있어야 한다.

자기 자랑 싸움에서 소외된 못생긴 고양이는 노부부의 선택을 받아 사랑과 정성으로 키워진다. 못생긴 고양이를 보고 혹자는 겸손하다고 말하는데 그것보다는 자신을 잘 아는 고양이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겸손은 자랑할 수 있음에 자신을 낮추는 마음이지만 못생긴 고양이는 단순하게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인 것이다.

나에게도 쉼이 필요함을 받아들인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지나치게 하면 지치고 이것을 방관만 하고 있다가는 아예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없을 것을 깨닫는다. 어제 입추였다.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으니 생각을 바꿔 나에게 쉼을 주고 가만히 기다리는 시간도 필요함을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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