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이 싫으면?
절이 싫으면?
  •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 승인 2021.08.05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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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속담이 있다. 그런데 절이 싫다고 해서 꼭 중이 떠나야만 하는 것일까? 이 속담에서 `중'이라 함은 비단 불교의 승려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절 또한 불교의 사찰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모든 단체, 조직 등 세상이 바로 절이고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구성원을 의미하는 말이 바로 중이라고 이해해도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중'을 다섯 부류로 나눠서 살펴보면, 절이 싫다고 무조건 떠나는 것이 최선인지 아닌지가 분명해진다.

절의 문제가 무엇인지 잘 알면서도, 온갖 문제를 일삼는 못된 주지와 한패가 돼서, 선량한 신도들을 기만하고 못살게 구는 등 악행을 저지르는 부류가 가장 못 된 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중과 목사 신부 등은 자신의 안위와 목구멍 풀칠을 위한 하나의 방편 및 수단으로 중질을 하고, 목사질을 하며, 신부질을 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처럼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못되고 사악한 부류들은 우리 사회 내 독버섯으로 속히 제거돼야 하는 파순(波旬)이고 악마며 사탄에 지나지 않는다.

절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등등 아무 생각 없이 하루하루 시주 밥만 축내는 부류가 두 번째로 딱하고 어리석은 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주변의 문제점들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문제의식도 없는 어리석은 중을, 속세를 초월한 무심도인(無心道人)으로 착각해선 안 된다. 또 절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잘 알기에 틈만 나면 입으로 불평불만을 토해내면서도, 먹고 입고 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절을 떠나지 못하고 눌러앉아 있는 부류가 세 번째로 한심한 중이다. 입으로만 부질없는 불평불만을 터트릴 뿐, 현실에 안주-야합하면서 대충대충 살아가는 중이, 우리 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구성원들의 자화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절의 문제가 무엇인지 잘 알지만, 자신의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알기에, 괜한 불평불만을 일삼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 없이, 새로운 수행처를 찾아 훌쩍 떠나는 중이 바로 네 번째 부류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경우인데, 과연 이것이 최선일까? 절의 문제점뿐만 아니라, 문제의 해결책까지 정확하게 인지하고, 절의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바로잡는 올곧은 중이 마지막인 다섯 번째 부류로, 중생들을 이끄는 참다운 스승인 스님이고 갈 곳 잃은 양 떼를 이끄는 진정한 목자일 것이다. 지혜로운 민주시민이라면,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세상이 싫다고 해서 무조건 떠나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나 올바른 생각, 올바른 말, 올바른 행동을 통해 파사현정(破邪顯正) 하며, 아름다운 세상을 앞당기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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