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밤
여름 밤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1.08.0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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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계절마다 밤이 주는 느낌은 다르게 되어 있다. 겨울 밤이 길고 외롭고 차갑다면, 여름 밤은 그 반대일 것 같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겨울은 낮에 비해 밤이 더 야박한 대접을 받지만, 여름은 거꾸로이다. 아무래도 밤이 되면 덜 덥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朝鮮)의 시인 오숙도 여름에는 낮보다 밤을 선호했던 것 같다.


여름밤(夏夜)

庭院何寥落(정원하요락) : 정원은 어찌 이리도 적막한가
繩槳坐夜闌(승장좌야란) : 의자에 앉은 채로 밤이 깊었네
自從天氣熱(자종천기열) : 날이 더워진 뒤로부터
覺月光寒(갱각월광한) : 달빛이 차가움을 다시 느낀다
宿鳥時時出(숙조시시출) : 잘 새는 때때로 나타나고
流螢點點殘(유형점점잔) : 흐르는 반딧불 여기저기로 사라진다
詩成句未穩(시성구미온) : 시는 지었으나 구절이 온당치 못하니
吾道信艱難(오도신간난) : 우리의 갈 길은 참으로 어렵기만 하다


어느 여름 밤, 시인은 의자에 앉은 채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마당에 놓인 의자에 가만히 앉아 여름 밤의 모습과 느낌을 관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인에게 먼저 찾아온 여름 밤의 느낌은 적막함이다. 계절과 상관없이 밤은 적막하기 마련이지만, 시인에게 여름 밤이 특히 적막하게 느껴지는 것은 여름 더위에 지친 사물들이 움직임을 그쳤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세상의 사물들이 다 숨어 버린 것은 아니다. 밤이 깊어지자, 무료한 시인에게 말을 걸어온 것은 중천에 뜬 달이었다. 시인이 얼굴을 들어 수인사를 나누고 보니, 달빛이 차갑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러고 보니 날씨가 더워지고 나서부터 줄곧 그랬다. 이 차가운 느낌은 달이 시인에게 선사한 여름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달 덕분에 시원해져서일까? 시인은 주변을 찬찬히 살펴보는 여유를 찾게 된 듯하다. 숲 속에서 잠들어 있던 새들이 심심치 않게 밖으로 나와 날아다니는 거며, 반딧불이 점점이 켜졌다 꺼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여름 밤이 깊어 가면서 시인은 시 한 수를 완성하였으나, 언제나 그렇듯이 뭔가 미진한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창작에는 만족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님을 새삼 깨닫게 된다.

더위가 극성을 부리는 한여름은 낮은 말할 것도 없고 밤이라고 해서 더위가 가시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여름은 밤이 낮보다는 낫다. 따가운 햇볕이 없는 것만으로도 여름 밤은 지낼 만하다. 여기에 여름 밤이 만들어 주는 이런저런 풍광에 마음을 연다면 힘겨운 여름나기가 한결 수월해지리라.

/서원대 중국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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