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갈비의 득과 실
닭갈비의 득과 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1.08.01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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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국민의힘의 `계륵(鷄肋)' 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계륵은 닭갈비다. 뼈에 붙은 살점이 많지않아 먹을 게 없지만 맛이 좋아 버리기엔 아까운 부위다. 삼국지에서 유비에게 요충인 한중(漢中) 땅을 뺏기 위해 출병한 조조가 했던 말로 유명하다. 전선이 지리한 교착상태에 빠지면 보급에 어려움을 겪는 원정군이 불리해지기 마련이다. 선공을 하려니 승산이 없고 돌아가려니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게 조조는 두렵다. 저녁식사로 닭고기를 먹던 그에게 한 장수가 다음날 작전을 물었다. 마침 닭갈비를 씹다가 한중이 뱉기도 삼키기도 마뜩찮은 땅으로 여겨져 쓴웃음을 짓던 그가 냅다 내지른 말이 “계륵 같으니” 였다. 송 대표는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에 도움도 안되고 버리기도 애매한 고민덩어리가 될 것이라는 취지로 닭갈비를 언급했다.

그렇다면 민주당에는 계륵이 없을까? `강성 친문'으로 분류되는 열혈 지지층을 꼽을 수 있겠다. 이들은 상대 정치 진영에 매우 적대적인 게 특징이다. 상대를 공생할 파트너가 아니라 척결해야 할 패악으로 규정한다. 상대에 대한 일체의 양보나 합의, 공감은 배신으로 간주한다. 피아를 가리지않는 문자 투척이 장기인데 이 세례를 맞으면 배겨날 장사가 없을 정도로 공포적이다.

최근에는 법사위원장 자리를 국민의힘에 양보하기로 합의한 민주당 송 대표와 윤호중 원내대표가 문자폭탄을 맞고 있다. 법사위원장은 상대적 소수인 제1야당이 맡아온 것이 오랜 관행이었다. 야당이 차지한 법사위가 다른 상임위 안건까지 거머쥐고 처리를 지연시키는 등 월권을 일삼아 원성을 사기도 했지만 다수당의 독주를 막기 위한 일종의 견제장치로 통용됐다. 지난 총선서 압승한 민주당이 깬 이 전통이 이번 합의로 부활한 셈이다.

열혈 지지자들은 개혁을 포기한 굴복이라고 강하게 반발하며 여당 지도부에 문자 메시지를 날리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달구고 있다. 지도부가 심사기간을 반으로 줄이고 심사범위도 `체계와 자구'로 제한하는 등 폐해 방지책을 세웠다고 설득했지만 막무가내다. 이들의 오버 액션과 과잉 대표가 당에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당 안팎에서 제기되지만 본회의 표결에서 법사위 양보에 반대하겠다고 공언하는 의원이 속출할 정도로 세가 막강하다.

국민의힘의 계륵은 윤석열이 아니라 `이대남'(20대 남성) 이 될 것 같다. 엊그제 국민의힘 양준우 대변인은 양궁 올림픽 3관왕 안산 선수의 짧은 머리를 트집잡아 페미니스트라고 공격한 네티즌들을 SNS를 통해 변호했다. 궤변에 가까운, 그래서 눈물겹기도 한 그의 변론에선 이대남에 대한 당의 집착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는 안산 선수가 과거 SNS에 사용한 몇몇 단어가 남성혐오에 해당한다는 일방적 추론을 내세우며 사태의 본질은 남혐 표현에 대한 논쟁이라고 왜곡했다. 그는 “안산 선수에 대한 비이성적 공격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운을 떼고서는 결과적으로 숏커트와 여대 이력을 물고늘어진 치졸하기 짝이 없는 행태를 시대적 담론으로 포장했다. 내 편이니 철딱서니 없는 망동까지 품고 가자는 의도로 밖에 읽히지 않는다. 국민의 보편적 의식과 감성에 역행해가며 내년 대통령 선거를 치르기는 어렵다. 이대남을 어디까지 포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조만간 국민의힘에 큰 고민거리로 대두될 것이다.

조조의 막사를 나와 계륵의 의미를 곱씹은 장수는 마침내 주군의 의중을 깨달았다. 부하들에게 “내일 후퇴명령이 떨어질 테니 미리 군장을 꾸리라”고 지시했다. 진퇴를 놓고 전전긍긍하는 조조의 고민을 단칼에 정리해 준 것이다. 조조는 장수의 통찰력에 감탄하며 퇴각을 결정했지만 자신의 명령을 앞서간 그에게 군령을 농단했다는 죄를 물어 참수형에 처했다. 누군가 목을 걸지 않고서는 닭갈비 딜레마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우리 정치판에도 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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