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본 공
아이 본 공
  • 반영호 시인
  • 승인 2021.07.29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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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반영호 시인
반영호 시인

 

오늘은 토요일. 토요일은 바쁘다. 손자 손녀가 농장에 오는 날이다. 아침부터 컨테이너와 축사며 하우스 청소를 하고 위험성이 있는 장애물은 한적하고 안전한 곳으로 모두 치워 놔야 한다. 물놀이를 위하여 고무다라에 물을 가득 받아 놓는 일도 잊지 않았다. 골짜기의 물은 차갑다. 아침부터 받아놓고 한낮 뜨거운 태양 볕을 쬐면 따뜻하게 데워진다. 무엇보다 단속을 철저히 해야 할 곳이 있다. 농약보관함을 꼭 잠그고 농기구 창고도 철저히 통제시켜 놓아야 안전하다. 아이들은 위험하다는 걸 모른다.

아무리 준비를 철저히 한다 해도 산중의 지리적 여건은 어쩔 도리가 없다. 90퍼센트 이상이 울퉁불퉁한 비알길이다. 걸음이 불안정한 세 살배기 손자는 엄청 신경이 쓰인다. 머리와 상체가 앞으로 숙여진 체 뒤뚱거리며 불안하게 걷는데 무조건 저돌적 직진이다. 절제와 통제를 모르니 작은 돌멩이나 나뭇가지에도 넘어질 우려가 크다.

잡풀을 제거하는 건 필수다. 뱀 같은 동물이 출현할 가능성도 있고 무엇보다 풀에 붙어 있는 진드기와 풀 독을 피하려면 제초작업을 깔끔하게 해 두어야 한다. 그리고 벌레 퇴치 스프레이와 벌레 물린 데 바르는 약, 가려움, 땀띠에 바르는 약이 떨어지지 않았나 체크해야 하고 해열제, 소독약, 붕대, 밴드 등 상비약도 확인해 보아야 한다.

아이들이 농장에 오는 이유는 그저 놀러 오는 것이 아니다. 먹거리 체험을 시켜주기 위함이다. 요즘 한창인 오이, 호박, 가지, 토마토, 참외, 수박 따기를 해 보고 과일로는 복숭아와 매실, 포도, 머루 따기를 시켜볼 요량이다. 이것들은 모두 병해충 방제를 하지 않은 무공해 작물들이라서 체험하며 현장에서 따 먹어도 좋다. 다만, 소독을 하지 않으면 재배할 수 없는 고추와 키가 커 손이 닿지 않을 옥수수는 내가 따 보이는 간접체험을 시켜야 할 것이다. 그리고 체험하며 직접 먹을 수 없는 채소들도 체험할 수 있겠다. 상추, 쑥갓, 깻잎, 당근, 당귀, 참비름은 따서 점심시간에 맛을 보도록 하고 토란과 호박잎, 고구마 줄거리 따는 것도 시켜 보아야겠다. 또 아직 익지 않아 체험할 수 없는 과실이 있다. 밤, 사과, 배, 대추, 감, 호두, 은행, 자두는 둘러보며 설명해 주는 것으로 대신할 것이다.

축사에도 들릴 예정이다. 닭과 오리, 기러기가 있는 닭장은 손녀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둥우리의 달걀을 꺼내고 이곳저곳에 낳아놓은 오리와 기러기 알을 찾아내는 것을 마치 보물찾기하듯 아주 재미있어한다. 모두 방목해서 키우지만 부르면 우르르 몰려오니 걱정할 게 없는데 토끼는 불러도 우리로 돌아오지 않으니 이번엔 토끼 얼굴 보기는 어렵겠으나 멀리 나가지 않는 새끼들에게는 당근을 먹이로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오리와 기러기의 놀이터인 연못도 들려야 한다. 아이들은 마름과 연잎이 둥둥 떠 있는 연못을 무척 좋아한다. 작은 고무보트에 태워 낚시로 붕어, 잉어, 메기, 향어를 낚아보고 닭 사료나 강아지 사료를 넣은 어망을 던져 산천어, 피라미, 구구리, 새우, 미꾸라지 등을 건져 올려보겠다. 맑고 차가운 물이 유입되는 물레방아가 있는 곳에서 물총놀이를 시켜보겠다. 물놀이는 아이들이면 누구나 신이 나는 놀이다.

뭐니 뭐니 해도 먹거리가 제일 걱정이다. 김밥과 음료수를 준비해야 하는데 아이들은 어른처럼 콜라, 사이다 같은 자극성 있는 음료수는 금물이니 며느리에게 물어봐 챙겨야겠다. 만반의 준비가 끝났지만, 여전히 걱정이 많다. 연일 계속되는 최고조의 폭염에 더위나 먹지 않을까. 물놀이가 심하여 감기 들지 않을까. 벌레에 물리거나 넘어져 상처나 입지 않을까. 햇빛 가리개로 차광막을 여기저기 쳐 놓았지만, 볕에 살갗을 데지는 않을까. 아이 본 공은 없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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