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받을 소중한 이름들에게
환대받을 소중한 이름들에게
  •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 승인 2021.07.25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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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오래전에 한 남성 노인을 상담한 적이 있다. 그는 따뜻했고 유머 섞인 말을 할 줄 아는, 보통의 노인보다 사회성이 있어 보였다. 곧 구십을 바라보는 나이라지만 신체적으로도 건강한 편이었다. 자주 그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나만 남았어, 친구들도 노인정 사람들도 집사람도 키우던 개도 다 죽고 나만 아직 살아있어.'라는 말이다. 비정형성 우울, 그의 진단명이다. 혼자만 남겨짐에 대한 두려움과 고독을 초월한 듯 그의 말투는 휙휙 지나가는 시간 속에 문득문득 나를 환기시키며 스스로에게 질문 하곤 한다. `넌 혼자 남겨지면 어떻게 살 거니?' 그의 우울감을 충분히 이해한다. 더는 타인에게 마음 여는 법 없이 가벼운 인사 정도만 하면서 지냈던 그분을 기억나게 하는 그림책이 있다. 신시아 라일런트가 쓰고 캐드린 브라운이 그린 <이름 짓기 좋아하는 할머니>다.

깡마르고 개성 강해 보이는 할머니는 집과 자동차, 매일 앉아 차를 마시는 의자, 옷장, 침대 등에 이름을 붙여 살아있는 사람에게 대하듯이 말을 건다. 나이 든다는 것은 고독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혀야 하나 보다. 이렇게 사물에게조차 말을 걸어야 한다니. 살아있는 것을 잃고 난 뒤, 상실감에 슬퍼하고 싶지 않은 그녀의 마음을 알 수 있다. 할머니의 이름 짓기는 나름의 규칙이 있다. 할머니보다 오래 살 것들에만 이름을 붙인다. 이 대목에서 오래전 그분이 생각난 것이다. 자기보다 먼저 떠난 사람들을 더 이상은 보고 싶지 않은 절박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그들보다 오래 살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매일 행복해 보였다. 그러나 인생은 언제나 기회와 반전이 있는 법. 어느 날 갈색 강아지가 그녀 집을 찾아온다. 반응할 줄 아는 존재를 만났지만 할머니는 먹을 것만 건 낼 뿐이다. 배고픔을 채워주는 할머니가 강아지는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강아지 역시 먹이를 구할 때 말곤 함부로 꼬리를 치거나 아양 떨며 질척대지 않는다. 혹시, 강아지도 할머니와 같은 상처가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는 것은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한다. 대등한 존재로서의 소통은 서로가 알아보는 인식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이름 짓기는 대상을 내 안에 들이고 자리를 만들어 주는 과정이다. 하지만 그녀는 강아지에게 먹을 것을 주는 순간부터 굳이 이름 지어 부르지 않아도 마음으로 들여놓았다. 강아지 자리를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이름 지어 부르지 않는 것인데 그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강아지가 개가 되도록 먹을 것을 주고 안부를 물었던 존재가 어느 날부터 오지 않자,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찾고 유기견 보호소까지 간 할머니의 진심은 이름 지어주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나중에 지어준 개의 이름 `러키'보다 내 마음을 감동시킨 것은 “우리 개를 찾으러 왔어요.”다. 그 개는 이름 지어주는 것보다 할머니의 마음에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이름 지어주는 것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이 마음으로의 환대다. 할머니는 자신보다 먼저 떠난 친구들과 얼마나 좋은 시간을 보냈는지 떠올리며 생각의 관점을 바꾼다. 그리고 이렇게 좋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던 것 또한 행운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확장된 깨달음의 동기가 새로운 존재를 마음으로 환대하면서다. 다가오는 누군가를 사심 없이 환대하는 것, 그리고 이름을 지어주는 것, 좀 더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자신에게 선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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