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읽는 기준을 바꾸다
세상을 읽는 기준을 바꾸다
  • 이영숙 시인
  • 승인 2021.07.25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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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이영숙 시인
이영숙 시인

 

“선생님, 잘 지내시지요? 오늘 학교 독서동아리에서 인공지능과 딜레마에 대한 토론 수업을 했어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떠오르면서 선생님과 함께했던 방과 후 독서 논술 수업이 정말 그리워요.”

중학교 2학년인 예빈이가 보낸 카톡이다. 학교에서 독서동아리 부회장을 맡았다는 제자는 초등 방과 후 독서 논술 수업을 5년이나 수강하고 졸업한 제자이다. 국어 선생님께 `작가와의 만남' 시간에 초청 작가로 나를 요청했다는 것이다. 며칠 후 `작가와 함께하는 독서 교육'에서 `세상을 읽는 기준을 바꾸다, 시점 바꾸기'라는 타이틀로 도서실에서 만남 신청한 학생들과 90분 동안 흥미진진한 특강을 열었다.

`이 세상에 올바른 해석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여 지금까지 기준이라고 여겨온 선과 악의 이분법을 짚어보고 대니얼 디포가 쓴 《로빈슨 크루소》를 미셸 투르니에가 수평적 시점으로 패러디한 《방드르디, 야생의 삶》을 독서토의 텍스트로 삼았다. 먼저 학생들에게 각자 손을 펼쳐 보라고 했다. 무엇이 보이느냐는 질문에 대부분 손등이 보인다고 했다. 손을 뒤집어 다시 보라고 하자 그제야 손은 손등과 손바닥으로 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본다고 하는 것들은 정확한 것인가. 인간, 서양, 백인, 남성, 성인, 기독교, 수도, 도시중심으로 진리화한 기준들이 인간 중심으로 해석한 《은혜 갚은 까치》를 만들어냈고 가부장 중심인 《선녀와 나무꾼》을 창작했다. 그중에서 대니얼 디포의 소설 《로빈슨 크루소》 는 인간, 서양, 백인, 남성, 성인, 기독교 중심으로 해석한 대표 작품이다. 문명인 인간 중심으로 해석할 때 야생에서 살아남은 로빈슨은 위대한 인물이다. 그러나 자연인 프라이데이 시점에서는 유럽의 한 인공도시에서 와 자연을 함부로 훼손한 야만인으로 볼 수 있다. 야생 동물을 가축화하고 원주민 아이에게 영어와 성경을 가르치며 도시 문명과 어른의 세계, 주인과 노예의 주종관계를 가르치는 이런 유의 작품은 시대가 만든 산물이다.

원작의 시점을 달리하여 수평적 읽기를 한 미셸 투르니에의 《방드르디, 야생의 삶》 은 방드르디의 실수로 로빈슨의 문명 자본인 폭약, 금화, 총, 성경 등이 가득한 보물창고가 불타는 바람에 주종관계가 해체되고 우정 관계로 전환하는 구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로빈슨은 문명의 산물을 다 잃고서야 가벼운 몸으로 태양 아래서 진정한 자유를 누린다. 그동안 자신을 억눌렀던 중력에서 해방된 로빈슨이 자연, 야생, 원시, 태양의 삶에 동화돼 스페란차(희망의 섬)에 영원히 남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학생들은 시점 바꾸기를 통한 이색 토의 수업에 큰 호기심을 보이며 자신이 읽은 책 중 잘못된 부분들을 찾아냈다. 김만중의 《사씨남정기》에서 사 씨와 교 씨의 관계도 가부장 중심의 축첩제도가 만들어낸 시대적 선악이라는 통찰이다. 세상은 서로 다양한 것들이 어울려 원형의 띠를 이룬 곳이다. 여기에 중심을 세워 우열이라는 가치를 매길 수는 없다. 이제는 손등이라는 중심에 밀려 해석되지 못한 수많은 손바닥을 조명해서 수평구도의 행복한 세상을 모색해야 한다.

`왕비를 미모로 뽑은 백설 공주 아버지(백설 공주)', `토끼는 잠자고 싶지 않았어(토끼와 거북). `유연수, 당신 잘못이 크네요(사씨남정기).'등 독서토의를 마치고 `나도 작가'시점 바꾸기 시간에 제목과 첫 문장까지 써보는 것으로 진행하고 왔는데 그 후 학생들이 완성한 작품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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