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자서전
어떤 자서전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21.07.22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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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나의 놀라운 벗, 가르침을 주는 벗, 닮고 싶은 벗 병록이가 자서전을 냈다. 교도소장이 웬 자서전? 같잖은 평가는 금세 바뀌었다. 참으로 놀라웠다. 무엇이 나를 놀라게 했을까? 
사람들은 의심할 것이다. 네 친구니까 그렇지, 네가 아는 이야기가 나오니까 그렇지, 네가 좋아하는 것이 나오니 그렇지, 네가 닮고 싶다니 그렇지, 나아가, 자서전의 오류 있잖아, 너도 말리는 것이라고. 
자서전에는 오류가 있다. 자랑하고 싶은 것, 부끄러운 것을 숨기고 싶은 것, 잘못한 것을 꾸미고 싶은 것, 한마디로 과대포장의 병이다. 그래서 자서전을 쓰는 사람이 가장 조심하는 것이 이 셋이고, 후대에 남는 자서전은 이 병을 극복한 작업이다. 
서양역사에서 많은 사람이 읽고 지금도 읽히는 자서전은 루소의 ‘고백록’일 것이다. 그 이전에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이 있었지만 이는 신앙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온전한 자서전으로 보기에는 어렵다. 루소 이후에 많이 읽힌 자서전은 러셀의 것일 텐데, 현대철학자 가운데에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의 자서전 첫머리에는 바로 내가 말하는 자서전 병을 넘어서고자 하는 의지를 강하게 보인다.
루소의 ‘고백론’은 정말로 솔직하다. 유럽에서조차 판본에 따라 빠져 있는 것이 있을 정도다. 루소의 자서전을 정리한 독일학자에 따르면 루소는 노출증이 있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밤 칼 찬 해군에게 들켜 두들겨 맞을 뻔했다는 일화다. 열 살 무렵 라틴어를 배우던 집 목사의 딸이 자기를 때릴 때 이상하게 좋았다는 고백은 거의 다 실려 있다. 그 누나가 눈치를 챘는지 두 번 때리고는 때리지 않았단다. 대신 그 오빠가 때렸다. 요즘 말로 하자면 루소는 바바리맨에다가 매저키스트였다. 
동양의 전통은 죽을 때 같이 파묻는 ‘묘지명’(墓誌銘)이 일반적이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자찬(自撰)’묘지명이 있다. 스스로 묘지명을 쓰는 것이다. 묘지명이라는 이름 때문에 그렇지, 지나간 삶을 정리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동양에서는 한 인물의 일대기를 정리한 것을 ‘행장’(行狀)이라고 불렀다. 대체로 제자가 쓰는 것으로 일종의 개인사인데, 우리처럼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일종의 요약본이라서 중요하게 읽힌다.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 사양지심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는 동양적 분위기라서 서양식 자서전은 많지 않지만 이순신의 ‘난중일기’(亂中日記)처럼 결국은 당시의 상황과 개인의 고뇌를 온전히 담고 있는 것이 있다. 오늘날로 보자면 일종의 메모지만 가식이나 과장이 없다는 점에서 오히려 제대로 된 역사를 보여준다. 연대기를 중심으로 연구를 시작하자는 프랑스 실증주의 아날학파처럼 가치나 선택을 빼고 시대를 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크게 도움이 된다. 가치와 선택이 들어가지만 임진왜란을 중심으로 쓴 대표적인 글은 유성룡의 ‘징비록’(懲毖錄)이겠다. 
병록이의 자서전은 성장기까지 자기 감정선의 탄생을 그렸다는 점에서 ‘고백’의 성격을 지니고, 33년간의 교도소 근무의 애환을 모았다는 점에서 잘못을 뉘우치고 삼가는 ‘징비’의 특징을 갖는다. 벗들에게는 고백을, 동료에게는 징비를 보여주는 것이다.
근자에 본 좋은 책은 김홍도의 스승이자 동료이자 벗이라고 스스로 적고 있는 강세황의 ‘표암유고’였다. 그 안에 자서전 격인 ‘표암자지’(豹菴自誌)도 있다. 왜 표암인가 했더니 등짝에 있는 큰 점을 스스로 표범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엊저녁부터 오늘 새벽까지 통독한 책은 바로 최병록의 ‘사람이 보물이다’다.
정약용은 ‘자찬묘지명’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 나이 예순, 한 갑자를 다시 만난 시간을 견뎠다. 나의 삶은 모두 그르침에 대한 뉘우침으로 지낸 세월이었다. 이제 지난날을 거두어 정리하고,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 이제부터 빈틈없이 나를 닦고 실천하고, 내 본분을 돌아보면서 내게 주어진 삶을 다시 나아가고자 한다.”(‘다산의 마지막 습관’) 
우리 모두 스스로 경계하는 ‘자경록’(自警錄)을 쓸 때다. 최병록은 이름 자체가 ‘최병록’(崔秉錄: 스스로 높게 지켜낸 기록)이다. 
나는 이 특별한 자서전이 장차 ‘징비록’과 같은 역사적 기록으로 남기 위해서는 ‘교도 인물론’과 같은 글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 글에는 장기표와 같은 정치인에 대한 존경심, 화성연쇄살인 무죄판결을 받은 윤성여의 성실성, 그리고 통닭이 아니라 통닭을 시켜준 마음에 눈물을 흘리는 여러 범죄자들의 심리가 고스란히 드러난다(‘소생크 탈출’의 맥주 한 병이다). 물론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받을 때 같이 간 교도관 이야기와 조폭 김태촌과 함께 갇혀 있었던 경험도 나온다. 그 안에는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우리 성선설의 전통이 담겨져 있을 것이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람스럽고, 너도 그렇듯이 죄인들을 ‘사람 풀꽃’(유재삼 교도관)으로 대하는 자세야말로 서구의 교도행정이 지니지 못하는 대한민국 철학의 승리로 보인다. 
참고로, 나는 이름 날릴 사람이라면 병록에게 잘 보여야 한다고 떠들고 다녔는데, 이제 병록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어졌다. 그가 정년퇴임을 해서 신세 질 방도가 사라져서가 아니라, 이젠 내가 이름 날릴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참, 최 소장이 나에게 사과할 일이 하나 있다. 내가 재워달라고 할 때는 안 재워주고, 저만 하룻밤 잠잔 일이다. 교도소의 소음과 밝음에 놀랐단다. 그래서 안대를 수용자 전원에게 지급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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