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 그 달콤한 유혹
버킷리스트 그 달콤한 유혹
  •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 승인 2021.07.18 1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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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어느 날 텔레비전을 보다가 요즘 말로 웃픈(웃기고 슬픈) 사연을 듣게 되었다. 영국의 한 유명 코미디언이 갑자기 일을 그만두고 버킷리스트를 작성하여 이루는 데 평생 모은 돈을 다 썼다는 것이다. 그가 이렇게 과감한 결정을 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그가 시한부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의사는 그에게 남은 생이 3개월이라고 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의 시한부 판정은 오진으로 밝혀졌고, 그에게 남은 건 텅텅 비어 버린 통장뿐이었다.

내가 이 상황이었다면 우리 가족 곁에 조금 더 머물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쁘기도 하겠지만, 막상 남은 삶을 생각하면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다는 사실에 막막해서 마냥 웃기도, 그렇다고 울기도 참 애매한 감정에 휩싸여 한동안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 사연의 당사자는 시한부 판정 때문에 그동안 미루고 미뤘던 버킷리스트를 이룰 수 있었다며 웃어넘겼다고 한다. 그의 대인배 같은 소감에 신선한 충격을 받아 버킷리스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버킷리스트라는 말의 의미가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인 만큼 우리는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거나, 누리고 싶은 것들을 `죽기 전에는 기회가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버킷리스트 안으로 밀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는 쉽게 깨닫게 된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 정작 나이가 많이 들게 되면, 체력이 받쳐주지 않을뿐더러 젊었을 때 넘쳐났던 의욕도 점점 사라지고, 더 나아가 버킷리스트는커녕 특정 질병에 고통받으며 병원을 제집처럼 들락거리기 바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면 어떡해야할까?

돈은 별로 없어도 깡과 패기가 충분한 젊은 시절에 일상의 무력함에서 지금 당장 벗어나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떠나야 할까? 아니면 돈 때문에 비참해지기는 싫으니 직장생활을 한 10년 정도 해서 돈을 모은 뒤 나의 버킷리스트를 위해 과감히 사표를 던져야 할까? 이 질문의 답은 정해져 있다. 턱도 없는 소리다. 젊은이들이 너무 돈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면 벌써부터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돈 없으면 많은 것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직장생활 10년에 돈을 모으면 얼마나 모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버킷리스트가 마치 로또처럼 느껴진다. 인생에 대운이 깃들거나, 일생의 모든 운은 끌어 모아야 한번 될까 말까 한 로또 말이다.

그래서 평소 로또를 사지 않는 것처럼 나의 죽음이 코앞에 와도 버킷리스트를 작성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아직 죽음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나이이기에 세월이 더 흐르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당장은 버킷리스트에 `세계 일주'를 써놓고 이루지 못하는 꿈으로 남겨놓느니 일상에서 꾸준히 여행을 다니는 것이 전 세계를 일주는 못하더라도 더 의미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부모님과 해외여행 가기'라고 써놓고 내 가족 챙기느라 까맣게 잊어버리느니 평소에 가까운 곳이라도 자주 모시고 다니는 게 어쩌면 부모님이 원하는 진짜 효도라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버킷리스트'와 `죽음'은 마치 짝꿍처럼 느껴지기에 우리는 버킷리스트를 위해 남겨진 시간이 많다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어느 새 정신을 차려보면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어 버리는 게 인생이다. 먼 훗날을 기약하지 말고 하루하루 쌓여가는 일상을 더 들여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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