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의 이야기
돌의 이야기
  • 김경수 시조시인
  • 승인 2021.07.14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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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경수 시조시인
김경수 시조시인

 

얼마 전 나른한 오후 책을 보다가 문득 승찬과 오인의 인상 깊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 이유는 오인은 그동안 많은 날이 하나의 과오로 인해 즐겁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 반면 승찬은 과오 따위는커녕 아무 일도 없는 듯 즐겁게 살아온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고 그에게 과오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혹시하는 의심을 엿볼 수도 있어서였다. 평소 오인은 소심한 편이었고 승찬은 대범한 면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설령 과오가 사소하게 보일지라도 누구에게는 커다란 무게로 다가올 수 있겠지만 누구에게는 그보다 더 큰 과오라 할지라도 그냥 스쳐가는 바람에 날려 버릴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 순간 누가 말을 걸었다. 톨스토이였다. 책갈피 속에서 불쑥 나타나 그가 돌의 이야기를 꺼냈다. 어느 날 두 여자가 노인에게 가르침을 얻기 위해 찾아왔다. 우선 한 여자가 자신은 큰 죄인이라며 고백했다. 그녀는 젊었을 때 남편을 배신했고 그로 인해 늘 괴로워했었다. 또 다른 여자는 평생 법을 잘 지켰으며 딱히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는 바가 없어 늘 즐겁게 산다고 느끼고 있었다. 노인은 그녀들에게 살아온 삶에 대해 물어본 후 처음 말한 여자에게 네가 들 수 있는 가장 큰 돌을 가져오라고 하였다. 또 다른 여자에게 너는 가능한 많은 돌을 작은 것들만 모아서 가져오라고 하였다. 그녀들은 노인이 시키는 대로 돌을 가지고 왔다. 노인은 돌을 보고 난 후 그녀들에게 그 돌을 원래 있었던 자리에 갖다 놓고 노인에게 돌아오라고 하였다. 큰 돌 하나뿐인 처음 여자는 돌을 주웠던 자리를 찾아서 금방 원래대로 돌려놓았다. 하지만 다른 여자는 작고 많은 돌을 어디에서 어떤 돌을 주웠는지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아 돌을 넣은 자루를 도로 가지고 노인에게 돌아와야만 했다. 노인은 그녀들에게 말했다. 죄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리고 처음 여자를 향해 너는 그 커다랗고 무거운 돌을 어디서 주웠는지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원래 있던 자리에 쉽게 가져다 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또 다른 여자에게 너는 어디서 그 많은 작은 돌들을 주웠는지 기억할 수가 없어 원래 있던 자리에 가져다 놓을 수 없었다. 죄도 그것과 마찬가지다. 노인은 처음여자에게 너는 자신의 죄를 기억하고 있고 죄를 뉘우치게 되어 죄의 결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었다. 하지만 또 다른 여자에게 너는 여러 가지 죄들을 범했으면서도 그것을 작은 것이라 여겨 기억하지 못하고 잊어버렸기에 뉘우침 또한 없을 뿐 아니라 죄를 저지르는 생활에 오히려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노인은 우리 모두 죄인이라며 뉘우치라고 외쳤다. 그리고 한 장의 책갈피 뒤로 그 노인과 함께 톨스토이도 사라졌다. 그렇지만 그들의 그림자는 오후 내내 노을빛을 맴돌았다.

많은 사람이 과오를 범하며 산다. 그런데 사람들은 과오를 모르거나 똑같은 과오를 범하고도 누구는 심각하게 누구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며 산다. 그렇다면 우선 거기에는 과오를 어찌 인정하느냐에 대한 해석이 요구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스스로 과오를 모르는데 뉘우칠 리가 없다고 본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므로 과오를 알고 뉘우치는 것은 당연한 귀결로 받아들여지지만 과오를 모른척하거나 모르거나 잊었다면 뉘우침 또한 기대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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